정양환 문화부 기자
미야케 야스코란 일본 작가가 쓴 이 그림책은 국내에 10년 전 출간됐다. 멀고 먼 우주, 땅콩처럼 생긴 별에 오목 나라와 볼록 나라가 있다. 두 국민은 딱 하나 손 모양이 다르다. 이름처럼 볼록 쪽은 동그라니 볼록하고, 오목네는 넓적하니 오목하다. 그게 그리 못마땅했는지 언제나 서로 헐뜯으며 업신여긴다.
최근 독일에 다녀오며 묘하게 이 책이 자주 떠올랐다. 1517년 10월 31일 ‘95개 논제’를 발표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역사 현장을 찾는 출장이었다.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로 나뉘는 역사적 순간의 흔적을 더듬으며, 불경스럽게도 ‘손만 다른’ 별나라 사람들이 눈앞을 맴돌았다. 특히 보름스에서.
그런데 현장에선 다소 색다른 얘길 들었다. 올해 이 청동신발이 만들어진 게 가톨릭의 ‘배려’ 덕이란다. 사실 이 공원은 보름스대성당 옆에 붙어있다. 관계자는 “독일에선 법적으로 가톨릭 건축물 인근에 타 종교 설치물을 세울 수 없다”고 귀띔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성당 측에서 루터의 가치를 존중해 대승적으로 이를 수용했다. 개신교 역시 ‘과하지 않게’ 소담한 기념물로 조성했다.
지난주 나온 ‘루터―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도 평소 선입견을 깨뜨리는 책이었다. 2010년 ‘탐욕의 지배’로 유명한 독일 역사가 폴커 라인하르트는 지금까지 종교개혁은 개신교 자료로만 접근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한다. 전체를 보려면 바티칸 사료 역시 함께 살펴봐야 한다. 오랜 연구 끝에 저자는 “종교개혁은 비텐베르크와 로마, 독일과 이탈리아 두 극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천사와 악마의 대결’이 아니라, 양측 모두 나름의 이유와 명분을 가지고 있었단 주장이다.
하나 짚고 넘어갈 건 있다. 당시 교황청이 훌륭했단 뜻은 아니다. 부정이 심각했고, 개혁은 시급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도 변혁의 움직임이 일고 있었다. 루터 역시 초기엔 ‘혁명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인쇄술이란 강력한 미디어 원군이 없었다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을 수도 있다. 그런다고 루터의 위대함이 흠집 나는 건 결코 아니지만.
오목 볼록 별은 어찌 됐을까. 으르렁대던 사람들은 하나의 사건을 겪은 뒤 마음을 고쳐먹는다. 높은 데서 발을 헛디딘 볼록 어린이의 손을 오목 어른이 잡아 구했다. 그제야 상대의 손이 자신과 맞춤이란 걸 깨달은 것이다. 다름은 서로의 약점을 채워준다. 그 차이가 지닌 아름다움을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읽고 배운다. 어른도 다 안다고? 알면서도 못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멍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