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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인구 급감… “피도 수입할 판”

입력 | 2017-10-24 03:00:00

헌혈 많이 하는 젊은층 줄고… 수혈 받아야 하는 노년층은 늘어
혈액공급도 저출산-고령화에 발목… “중장년층 헌혈 문화 확산시켜야”




‘A형, O형 혈액 급구.’

23일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앞에 한 직원이 이런 안내문을 들고 길거리에 서 있었다. 안내문에는 헌혈 후 지급하는 영화예매권, 무료 커피 쿠폰 등 기념품 종류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1시간 30분 동안 헌혈의집을 방문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헌혈 인구가 5년 만에 감소한 지난해부터 혈액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앞으로 3년 뒤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0년부터 헌혈이 가능한 인구(16∼69세)는 주는 반면 수혈을 받아야 하는 노인 인구는 급속히 늘어나서다. 저출산 고령화로 혈액 공급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3일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통계청의 인구 추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5년 3907만 명이던 헌혈 가능 인구는 2020년 3922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매년 감소해 2050년이면 300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큰 문제는 헌혈을 많이 하는 16세 이상 10, 20대 인구의 급감이다. 지난해 헌혈 참여자의 73%는 10, 20대였다. 국내 혈액 공급량의 상당 부분을 학생과 군인의 단체 헌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세 이상 10, 20대 인구는 2000년 1204만 명에서 2015년 998만 명으로 감소했다. 2050년에는 619만 명으로 줄어든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은 2015년 654만 명에서 2050년 1881만 명으로 3배로 뛴다.

2015년 627만 유닛(1유닛은 250∼500mL)이던 혈액 공급량은 지난해 589만 유닛으로 줄었다. 혈액 보유량이 3일 치 미만으로 떨어져 ‘주의경보’가 발령된 날도 잦아졌다. 2014년 단 하루도 없던 주의경보는 2015년 4일, 지난해 60일로 늘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수혈용 혈액이 부족해 환자에게 수술을 받으려면 수혈할 사람을 데려오라고 요구하는 의료기관까지 생겼다. ‘수혈용 혈액 부족 사태’가 현실화된 것이다.

현재 헌혈받은 혈액은 크게 수혈용과 의약품 제조용으로 쓰인다. 이 중 의약품 제조용 혈액은 수입이 가능하지만 환자 생명과 직결되는 수혈용 혈액은 감염 우려 등으로 100% 국내 헌혈로 조달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김준년 혈액안전감시과장은 “이런 사태가 장기화되면 혈액 수입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중장년층의 헌혈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23일 대한적십자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대한적십자사 박경서 회장은 “일본에서 중장년층 헌혈이 활발한 건 어린 시절부터 헌혈 교육을 충분히 받은 덕분”이라며 “헌혈 문화 개선을 위해 교과목에 헌혈을 장려하는 내용을 넣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중장년층이 대다수인 직장인을 겨냥해 헌혈 시 휴가 등 인센티브를 주는 내용의 중장기 대책을 다음 달 발표한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