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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휘성 “돈은 溫氣있을때 써야” 살던 집도 기부

입력 | 2017-10-24 03:00:00

22억 아파트 高大에 쾌척한 유휘성씨
어릴적 장터 떠돌며 어렵게 공부해… 돈 벌면 어려운 학우 돕기로 다짐
2011년-2015년에도 10억씩 기부 “연구 힘써 노벨상 받는 학우 나오길”




고려대 출신 기업인 유휘성 씨(왼쪽)가 23일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염재호 고려대 총장과 함께 기부증서를 펼쳐 보이고 있다. 22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쾌척한 유 씨는 2011년, 2015년에도 각각 10억 원을 기부하는 등 40여억 원의 재산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고려대 제공

“젊었을 때는 버는 돈이 내 돈인 줄 알았어요. 살아보니 아니더군요. 쓰는 돈이 제 돈입니다.”

23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시가 22억 원 아파트를 고려대에 기부한 유휘성 씨(79) 말이다. 이날 서울 성북구 고려대 캠퍼스에서 만난 유 씨는 “죽을 때 수의에 넣어갈 수도 없는 돈, 꼭 필요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고 보람을 듬뿍 느끼는 게 내 돈으로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유 씨는 “제 돈이 누군가의 삶을 일으켜 세울 온기가 있을 때 과감히 써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유 씨는 고려대 상학과(현 경영학과) 58학번이다. 1970년대 작은 건설회사를 창업해 30년 넘게 키운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그의 기부는 처음이 아니다. 2011년과 2015년에 각각 10억 원을 고려대에 기부했다. 이번까지 합하면 고려대 기부금은 40억 원이 넘는다.

유 씨가 기부에 열심인 이유는 힘들게 유년 시절을 보내며 공부한 경험 때문이라고 한다.

“13세에 6·25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고아가 됐어요. 14세 때 장터를 떠돌며 성냥이나 누룩을 팔아서 먹고살았어요. 자전거를 타고 40km가량 떨어진 장터를 오가기도 했습니다.”

유 씨는 14세 때 초등학교에 들어가 두 달 남짓 다니다 졸업했다. 그는 “피란 아동들에게 학교에 오면 모포 5장을 준다기에 찾아갔다. 덮고 잘 이불이 없었다”고 말했다.

충북 진천이 고향인 유 씨는 고등학교 때 서울에서 유학하며 작은아버지 집 신세를 졌다. 미국 등에 입양된 전쟁고아들이 나중에 자라서 영어로 쓴 편지를 국내 후원자들에게 한국어로 번역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일하고 남는 시간에 공부했다. 그렇게 1958년 고려대에 들어갔다. 유 씨는 “돈 벌며 공부하는 일에 시달려 봐서 어렵게 공부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며 “그 친구들은 나처럼 지긋지긋하게 살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0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유 씨는 “벌 만큼 벌었으니 잘 쓰자”는 생각에 기부를 결심했다. 2011년 고려대 신경영관 건립에 10억 원을 냈다. 2015년에는 10억 원 규모 장학기금을 마련했다. 고려대는 이 돈으로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 28명에게 매달 생활비를 보냈다. 이번에 기부한 아파트는 유 씨가 1978년부터 2005년까지 27년간 가족들과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세를 준 집이다. 기초과학연구기금 마련에 쓰일 예정이다. 유 씨는 “돈에 얽매이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노벨상을 받는 학생들이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유 씨는 한국에 기부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미국 빌 게이츠나 앤드루 카네기처럼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기부하는 사람들이 국내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게 지론이다. 유 씨는 돈을 바닷물에 비유했다. “바닷물을 다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듯 가지고 있으면 더 욕심나는 게 돈입니다.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어야 나중에 죽을 때 갈증 없이 떠날 수 있지 않을까요.”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