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14년차 소방관이 본인이 경험한 ‘황당한 출동’사례를 소개하며 털어놓은 고충이 눈길을 끌고 있다.
현직 소방관이라고 밝힌 A씨는 22일 한 온라인커뮤니티에 ‘소방관 14년 중 황당했던 출동 사례 5가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A씨는 “화재 진압이나 구조활동, 동물 안전조치 업무를 주로 맡고 있다”며 “신고 중 정말 불필요했던 행정력 낭비 같은 사례 5개만 적어본다”고 글을 시작했다.
○ 늦은 밤 아내가 문을 안 열어준다고 문 열어달라는 신고
첫번째로 A 씨는 “문 열어달라는 신고가 은근히 많다. 보통 남자가 술 마시고 새벽 늦게 집앞에 왔는데 아내가 현관문 락 걸어버리고 안 열어주는 경우다. 이 경우 소방차가 나가도 방법이 없다. 소방관에게 문을 개방할 수 있는 장비가 있긴 하지만, 아내가 잠그고 안 열어주는 현관문을 강제로 열 수 있는 법적 근거나 권한은 1도 없다”고 토로했다.
○ 참새가 베란다에 들어왔는데 잡아달라는 신고
A 씨는 “베란다에 참새가 들어왔으면 베란다 문 열고 휘휘 저어 쫒아내면 된다. 소방관이 출동해 할 수 있는 일도 그것이 전부다. 큰 까치나 독수리 같으면 위험할 수도 있는데, 병아리만한 참새는 그냥 쫒아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 보일러에서 물이 샌다는 신고
이 문제로 여러번 출동했다는 그는 “보일러 배관에서 물이 새는 것은 저희가 고칠 기술도 없고 고칠 장비도 없다. 이런 것은 보일러 기술자에게 공임과 재료비 주고 고치는 것이지 소방관이 조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리에 돈이 들어야 하는 것은 돈을 쓰시라”고 충고했다.
○ 집에 바퀴벌레 나타났다고 잡아달라는 신고
A씨는 “바퀴벌레 몇마리가 집에 나타났다고 잡아달라 신고해서 나가긴 했는데, 바퀴벌레가 가구나 틈으로 숨어버리면 방법이 없다. 이런 것은 본인들이 바퀴벌레 퇴치약을 사서 깔던가, 전문 업체를 부르던가 해야 하는 사안이다. 말벌 같은 독충류는 119가 출동해서 조치하는 게 당연하지만 바퀴벌레 가지고는 신고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A씨가 가장 황당한 신고 1위로 꼽은 사연이다. 그는 “원룸 사는 30대 여자가 침대 밑에 휴대폰 떨어뜨려서 꺼내달라고 119 신고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면 이해 하겠지만, 출동해보니 신체 멀쩡한 사람이었다”며 “침대를 밀거나 막대기 넣어서 꺼내면 될 것을 119 신고한 것이다. 꺼내주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떠올렸다.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119가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했다가 ‘응급 상황’이 없어서 그냥 복귀한 건수는 2010년 8만 3044건에서 2015년 10만 9062건으로 5년 새 약 2만 5000건 늘었다. 현행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허위 신고’를 하는 사람에겐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소방대원의 구급활동을 방해할 경우 5년 이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악의적이거나 거짓 신고 외에는 처벌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박태근 동아닷컴 기자 pt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