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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의 재발견]명사형은 명사가 아니다

입력 | 2017-10-25 03:00:00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 울음 vs 욺

아래는 올바른 표기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없는가?

울음을 욺.   졸음이 와서 졺.   얼음이 얾

무슨 말장난이냐고 짜증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짜증 너머에서 맞춤법과 관련된 유의미한 생각을 이끌어 보자. 그게 맞춤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것을 만나면, 비교적 쉬운 부분을 뽑아 생각하자고 했었다. 예들에서 ‘울다, 졸다, 얼다’라는 기본형을 포착하였다면 관련된 사안을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울다 → 울음/욺’, ‘졸다 → 졸음/졺’, ‘얼다 → 얼음/얾’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울음, 졸음, 얼음’부터 보자. 이들은 ‘울다, 졸다, 얼다’에서 왔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단어다. ‘울-, 졸-, 얼-’에 ‘-음’이 붙어서 새로운 명사가 된 것이다.

아예 품사까지 다른 각각의 단어이기에 각각 사전에 실린다. 물론 이 단어들이 ‘울-, 졸-, 얼-’과 의미적으로 관련됨은 확실하다. 이 때문에 ‘우름(×), 조름(×), 어름(×)’이라 쓰지 않고 원형을 밝혀 ‘울음, 졸음, 얼음’이라 표기하는 것이다. 의미적으로 연관된다고 같은 단어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욺, 졺, 얾’은 어떨까? 이 단어들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여전히 ‘동사’이기 때문이다. 주어나 목적어를 취하는 것은 동사의 특성이다. ‘울-, 졸-, 얼-’에 ‘-ㅁ’이 붙었지만, 앞에 ‘울음, 졸음, 얼음’과 같은 단어들을 주어나 목적어로 삼고 있다. 이 ‘-ㅁ’이 아예 품사를 바꾸지는 못함을 보여준다. 명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이전 품사의 특성을 가지는 것, 그것이 명사형이다.

명사형들은 문장에서 쓰이고는 곧 사라지기에 사전에 싣지 않는다. 이와 달리 ‘울음, 졸음, 얼음’은 하나의 단어가 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명사와 명사형의 차이는 그런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사전이 들어 있다. 문장을 만들 때 머릿속 사전에서 단어들을 꺼내어 쓰는 것이다. 하지만 문장을 만들 때는 원래의 역할과 다른 역할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특히 국어의 동사와 형용사는 다양한 어미가 붙어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중 하나가 ‘욺, 졺, 얾’에 붙은 ‘-ㅁ’으로, 명사형 어미다. 국어에 ‘ㄹ’로 끝나는 동사, 형용사를 명사형으로 만들 때는 ‘ㅁ’만 붙이고 ‘ㄹ’을 탈락시키지 않는다 했었다(10월 18일자 ‘맞춤법의 재발견’ 26회 참조). 그런데 이 세 단어는 맞춤법상 조금 특이한 면이 있다. 어떤 면일까?

불우한 삶을 살았다 → 불우한 삶을 삶
선대 학자들의 앎을 알았다
선대 학자의 앎을 앎

위의 ‘삶/삶’, ‘앎/앎’ 역시 ‘명사/명사형’의 관계이다. 명사형이 명사 자체와 훨씬 더 닮아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본 ‘울음/욺, 졸음/졺, 얼음/얾’과 이들의 차이다. 명사형과 명사의 형태가 다르기에 ‘울음/욺, 졸음/졺, 얼음/얾’의 맞춤법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잘못된 표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노면에 얼음이 자주 얼음(×)
밤새 울음을 크게 울음(×)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