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아래는 올바른 표기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없는가?
울음을 욺. 졸음이 와서 졺. 얼음이 얾
거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 보자. ‘울다 → 울음/욺’, ‘졸다 → 졸음/졺’, ‘얼다 → 얼음/얾’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울음, 졸음, 얼음’부터 보자. 이들은 ‘울다, 졸다, 얼다’에서 왔지만 그것들과는 다른 단어다. ‘울-, 졸-, 얼-’에 ‘-음’이 붙어서 새로운 명사가 된 것이다.
아예 품사까지 다른 각각의 단어이기에 각각 사전에 실린다. 물론 이 단어들이 ‘울-, 졸-, 얼-’과 의미적으로 관련됨은 확실하다. 이 때문에 ‘우름(×), 조름(×), 어름(×)’이라 쓰지 않고 원형을 밝혀 ‘울음, 졸음, 얼음’이라 표기하는 것이다. 의미적으로 연관된다고 같은 단어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욺, 졺, 얾’은 어떨까? 이 단어들은 사전에서 찾을 수 없다. 이들은 여전히 ‘동사’이기 때문이다. 주어나 목적어를 취하는 것은 동사의 특성이다. ‘울-, 졸-, 얼-’에 ‘-ㅁ’이 붙었지만, 앞에 ‘울음, 졸음, 얼음’과 같은 단어들을 주어나 목적어로 삼고 있다. 이 ‘-ㅁ’이 아예 품사를 바꾸지는 못함을 보여준다. 명사인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이전 품사의 특성을 가지는 것, 그것이 명사형이다.
명사형들은 문장에서 쓰이고는 곧 사라지기에 사전에 싣지 않는다. 이와 달리 ‘울음, 졸음, 얼음’은 하나의 단어가 되어 머릿속에 저장되어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다. 명사와 명사형의 차이는 그런 것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사전이 들어 있다. 문장을 만들 때 머릿속 사전에서 단어들을 꺼내어 쓰는 것이다. 하지만 문장을 만들 때는 원래의 역할과 다른 역할로 쓰이는 경우도 많다.
불우한 삶을 살았다 → 불우한 삶을 삶
선대 학자들의 앎을 알았다 → 선대 학자의 앎을 앎
위의 ‘삶/삶’, ‘앎/앎’ 역시 ‘명사/명사형’의 관계이다. 명사형이 명사 자체와 훨씬 더 닮아 있다는 점에 주목하자.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앞서 본 ‘울음/욺, 졸음/졺, 얼음/얾’과 이들의 차이다. 명사형과 명사의 형태가 다르기에 ‘울음/욺, 졸음/졺, 얼음/얾’의 맞춤법이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잘못된 표현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노면에 얼음이 자주 얼음(×)
밤새 울음을 크게 울음(×)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