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 아니라 독일도 헌재소장 임기 규정 없어 법률가 대통령 둔 청와대 소장 임기 명확화 요구는 어이없는 아마추어리즘 유남석 재판관 임명 뒤 소장 지명도 실은 꼼수다
송평인 논설위원
독일 연방헌법재판관의 임기는 12년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장은 지금까지 9명이 나왔는데 어떤 소장은 재판관 임기를 꼬박 채운 12년을 했고 어떤 소장은 4년도 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독일도 헌재소장은 재판관과 동시에 소장으로 임명되면 재판관 임기를 다 채우고, 재판관을 하다가 소장으로 임명되면 잔여 임기만 채우는 자리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6년으로 정해져 있는데 왜 헌재소장은 고정된 임기가 없을까.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법관과 급이 다른 자리로 본다. 대법원장은 대법관 제청권이 있다. 대법원장은 그 자신이 제청권을 통해 인사에 영향을 미치니 대법관과 동급일 수 없다. 헌재소장은 그렇지 않다. 헌재소장은 기본적으로 헌법재판관과 동급이며, 소장이 된 뒤에도 동료들 중 1인자일 뿐이다. 그래서 헌법은 헌재소장은 헌법재판관 중에서 임명하도록 하면서 대법원장에게는 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청와대가 내심 원하는 대로 소장 임기를 6년으로 하면 위헌이 될 소지가 있다. 헌법재판관은 임기가 6년이고 연임할 수 있다. 연임의 경우 6년 임기가 끝난 뒤 연임시킬 수 있지만 중도에 그만두게 하고 연임시키는 방식을 취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통령은 자신이 임명한 모든 헌법재판관을 중도에 사직하게 하고 연임시킴으로써 최대한 임기를 늘리려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6년 임기제는 유명무실해진다.
헌재소장 임기를 따로 6년으로 정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대통령은 전임 소장이 퇴임할 때 자신이 지명한 헌법재판관 중 한 명을 소장으로 임명해 그 재판관의 임기를 최대한 늘리려 할 것이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전효숙 재판관을 중도 사직하게 하고 새로 재판관과 동시에 소장으로 임명하려 했을 때 한 일이다. 당시 정치권은 대통령이 자신이 지명한 재판관의 임기를 늘리려 한 시도로 보고 반발했다. 정종섭의 ‘헌법학 원론’은 이것을 위헌적인 시도라고 적고 있다.
헌재소장 임기가 재판관의 잔여 임기라는 사실은 복잡하게 따질 것도 없이 헌법 조문에 충실하기만 하면 명확하다. 헌재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하고 소장 임기는 따로 없으니 소장 임기는 재판관 임기가 끝날 때 끝나는 것이다. 박한철 전 소장은 몸소 선례를 남기기도 했다. 선례까지 무시하고 명확히 해달라고 요구하는 측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 굳이 명확히 한다면 잔여 임기라고 하는 수밖에 없다.
청와대에는 변호사 출신 대통령이 있고 법학자 출신 민정수석이 있고 판사 사표를 내고 간 법무비서관이 있다. 그런데도 이런 아마추어적인 문제 제기가 나왔다는 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김이수 재판관을 소장 후보자로 내세울 때는 소장 임기를 특별히 문제 삼지 않다가 소장 임명이 뜻대로 되지 않자 소장 임기를 들고 나온 이율배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남석 광주고법원장을 한 자리 빈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재판관 9명을 다 채우고 나서야 소장을 임명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유 법원장이 재판관이 되고 다시 소장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국회는 같은 사람을 상대로 별 시간 차이도 없이 한 번은 재판관으로, 한 번은 소장으로 인사청문을 반복해야 한다. 이것은 국력 낭비다. 그래서 전직 대통령들은 재판관 후보자를 동시에 소장 후보자로 내는 방식을 썼다. 전효숙 건과 비교하면 이런 방식이 얼마나 나이스한지 금방 알 수 있다. 독일에서도 2명의 소장이 재판관 임명과 동시에 임명된 사례가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