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례문 복원 기념 낙성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2001년 10월 27일자 A26면.
경복궁 복원사업은 1991년 시작됐다. “경복궁 복원의 당위성은 일제가 왜 침략벽두에 도성의 왕궁과 성곽을 애써 부쉈는지를 살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당시 서울의 심장이며 한국인들의 마음을 잡고 있던 경복궁의 존재가 그들에게 어떻게 인식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동아일보 1991년 1월 24일자 2면 사설)
이 사업 중 흥례문 복원은 1996년부터 5년에 걸쳐 이뤄졌다. 흥례문과 주변 행각, 유화문(維和門)과 기별청(奇別廳), 영제교(永濟橋) 등 건물 6개동과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던 길) 등 총 517평을 복원하는 사업이었다.
복원된 경복궁 흥례문. 경복궁 복원사업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작업으로 꼽혔다. 동아일보DB
흥례문은 조선 초 태조 때인 1395년 지어졌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고종 때인 1867년 중건됐다. 그러나 1916년 일제가 광화문(光化門)과 근정문(勤政門) 사이에 있던 흥례문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었다.
동아일보는 이날 횡설수설 칼럼에서 “철거된 조선총독부 건물 자리에 원래의 임자가 들어섰다”고 적었다. 들보 등에 쓰이는 굵은 목재들은 국내에서 구할 수 없어 수입산으로 대체했지만, “문화란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야 우리 것이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조선시대의 궁궐을 21세기에 복원하는 데 대한 의미를 담았다.
복원된 흥례문의 현판을 달고 있는 모습. 서예가 정도준 씨가 현판을 썼다. 동아일보DB
경복궁 복원사업은 2030년까지 계속된다. 복원사업 시작 당시 조명됐던 “단순히 새 관광명소나 복고적인 왕궁의 재건이 아닌 우리의 민족정기와 자존심의 복원”(동아일보 1991년 1월 24일자 2면 사설)이라는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