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동 일구회 부회장은 1982년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KS)를 빛낸 주인공이다. 삼성과의 KS 6차전 9회초 거짓말 같은 만루홈런으로 OB에 우승을 안기고, 자신은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다. OB·두산의 레전드인 그는 올해 KIA와 KS에서 맞붙은 후배들의 선전을 기원했다. 스포츠동아DB
아직도 깨지지 않은 KS 11타점 대기록
1982년 KS 6차전 만루홈런의 주인공 “화끈한 승리를 기원”
KIA(전신 해태 시절 포함)와 두산(전신 OB 시절 포함)은 1982년 KBO리그 원년부터 영욕을 함께해온 팀이다. KIA는 한국시리즈(KS) 10회 우승의 명문이고, 디펜딩 챔피언 두산은 KS 5회 우승에 빛난다. 스포츠동아는 양 팀의 역사를 쓴 레전드들이 2017년 KS에서 또 다른 영광에 도전하는 후배들을 응원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두 번째로 OB의 레전드 김유동의 이야기를 담는다.
1982년 KBO리그 원년 이후 30년이 훌쩍 넘는 세월 속에 주인공이 바뀌지 않은 기록 중 하나가 한국시리즈(KS) 최다타점(12개), 그리고 한 경기 최다홈런(2개)이다.
쉽게 깨지지 않는 대기록을 쓴 이는 KBO리그 역사상 첫 번째 KS 최우수선수(MVP)인 김유동(63) 일구회 부회장이다. 1982년 10월 12일 서울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KS 6차전. 35년 전의 일이지만 김 부회장은 마치 기록지를 읽듯 모든 상황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 부회장은 “이선희 투수와는 대표팀 생활을 오랜 시간 함께해서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날 2회에 초구 몸쪽 빠른 공을 때려 1점홈런을 쳤다. 5회에도 1타점 적시타를 때렸다”고 회상한 뒤 “9회초 2사 만루에서 이선희는 역으로 2회 홈런을 맞았던 순간과 똑같은 몸쪽 빠른 공을 선택했다. 자신의 공에 자신감이 있는 투수들이 종종 택하는 전략이다. ‘초구에 홈런을 맞았던 똑같은 공을 또 다시 초구에’ 던질 수도 있다고 어느 정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스윙이 살짝 늦어 홈런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이게 넘어갈까?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뛰었다. 1루에 도달해서야 홈런이라는 것을 알았다. 홈까지 뛰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김유동은 아마추어 시절 최고의 거포로 이름을 날렸다. 실업팀 한국화장품의 창단 조건에 한양대 4학년 김유동의 스카우트 권리가 포함됐을 정도였다. 실업야구와 대표팀에서 맹활약한 김유동은 만 26세였던 1980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당시는 20대 후반이면 지도자 또는 사회생활을 준비할 시기였다. 그러나 KBO리그가 출범했고, OB는 1년 동안 배트를 잡지 않고 있던 김유동을 스카우트했다.
김 부회장은 그 해 KS 단일시즌 최다타점(12개)과 6차전에서 한 경기 최다타점(6개) 기록도 세웠다. KS 한 경기 최다홈런(2개)도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올해 KS 전망을 부탁하자 “KIA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지만, 우리(두산) 타자들은 플레이오프(PO)에서 확실히 감을 잡았다. 감각이 더 중요한 순간일 수도 있다. 또한 두산 선수들이 가을야구 경험이 더 풍부하다.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가을야구에는 미친 선수들이 나와야 하는데, PO 때 오재일처럼 KS에서도 새로운 선수가 그런 대활약을 펼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김 부회장은 은퇴한 야구선수들, 지도자들의 모임인 일구회에서 활동하며 학생선수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꾸준히 하고 있다. 올해 PO 1차전 시구를 한 박철순과 함께 자주 학생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PO 1차전 때 (박)철순이가 시구하는 모습을 보니까 참 기분이 좋았다.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렇게 예전 우승 멤버들을 예우하는 모습이 특별해 보였다. 철순이가 ‘시구한 경기에서 패해서 마음이 안 좋다’고 미안해하더라. 우리 마음이 그렇다. 앞으로 더 자주 그런 의미 있는 시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OB 김유동의 KS 6차전 그랜드슬램은 원년 개막전 MBC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홈런과 함께 프로야구가 국민스포츠로 일찍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역사적 순간으로 꼽힌다. 20대 후반 팔팔했던 야구선수는 이제 60대 초반 노신사가 됐지만,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 진했고 어린아이 같은 설렘으로 옛 팀의 KS 우승을 기원했다.
광주 |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