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버나디나-두산 박건우(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한국시리즈(KS)를 하루 앞둔 24일 미디어데이 때 ‘상대팀 엔트리에서 출전시키지 않고 싶은 선수를 지목 해 달라’는 요청에 두산 김태형 감독은 “김기태 감독”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KIA 김 감독도 “나도 그렇게 하겠다”라며 김태형 감독을 꼽았다. 재치가 빛난 대답에 팬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그렇다면 정말 상대 팀에서 한 명을 지울 수 있는 타자가 있다면 누구를 빼고 싶을까. 관점에 따라 여러 후보가 떠오를 수 있지만, KIA 로저 버나디나(33)와 두산 박건우(27)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은 올 시즌 여러 모로 흡사한 면이 많았다. 가장 큰 공통점은 바로 호타준족의 상징인 ‘20홈런-2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는 점이다. 올 시즌 20-20 클럽에 롯데 손아섭과 함께 총 3명이 추가되면서 역대 47번째 주인공이 출현했다. 아울러 박건우와 버나디나는 팀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박건우는 OB 시절을 포함해 두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주인공이 됐고, 버나디나는 타이거즈 외국인 선수 사상 최초 20-20 달성자가 됐다.
둘은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을 딛고 일어선 공통점도 있다. 박건우는 지난해 두산 주전으로 자리 잡으면서 KBO리그를 대표하는 외야수로 급성장했다. 올 초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당당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러나 그 후유증인지 시즌 초반 방망이 감을 잡지 못했다. 4월 21일 문학 SK전까지 타율 0.180(50타수 9안타)에 홈런 없이 1타점에 그치면서 결국 퓨처스(2군)로 강등되기도 했다.
이후 절치부심하면서 놀라운 반전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5월 2일 대구 삼성전에 1군에 복귀하면서 5타수 3안타를 비롯해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시즌 막바지까지 무서운 페이스를 자랑하며 결국 타율 0.366(483타수 177안타)로 2위에 올랐고, 20홈런-20도루까지 달성하면서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4월의 부진만 아니었다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겠지만, 그 부진의 아픔을 자양분 삼아 더 단단해졌다. 전반기에 흔들리던 두산이 후반기 고공비행으로 2위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데에는 박건우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버나디나 역시 4월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 타율이 2할을 겨우 오르내릴 정도로 부진하자 “퇴출하라”는 목소리가 이어지기도 했다. 지난해를 끝으로 계약을 끝낸 브렛 필을 그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버나디나는 5월부터 월간 타율이 3할대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고, 공수주에서 맹활약하며 KIA의 선두 행진에 효자로 평가받기 시작했다. 시즌 타율 0.320(557타수 178안타)에 27홈런, 32도루, 111타점을 올렸다. 아울러 118득점까지 기록하며 타이거즈 외국인 최초 3할-100타점-100득점을 올리는 역사를 쓰기도 했다. 홈런 3개만 추가했다면 이종범(1997년)과 홍현우(1999년)에 이어 타이거즈 역대 세 번째 30-30 클럽을 달성할 수도 있었지만, KBO리그 데뷔 첫해에 이 정도 성적을 거둔 것만 해도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무엇보다 성실한 자세와 친화력으로 선수들과 잘 어울렸고, 홈런을 친 뒤 헬멧을 잡고 뛰는 세리머니로 KIA 팬들과 하나가 됐다. KIA 역사상 가장 성공한 외국인타자로 평가할 만하다. 정교함과 장타력, 거기에 기동력까지 갖춘 박건우와 버나디나. 과연 2017년 KS에서는 어떤 호타준족이 더 빛날지 궁금하다.
광주 | 이재국 전문기자 keyst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