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대기, 3분 진료!
오래 기다리고 짧은 시간 진료를 받는 관행에서 벗어나 심층진료 체계가 도입되려면 병원과 환자 모두 준비가 필요하다. 종합병원에서 외래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 환자들. 동아일보 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이는 시범사업이라기보다 본격적인 시행이라고 볼 수 있는 규모다. 보건복지부는 27일 선정 심사를 거쳐 최대한 많이 선정할 예정이다. 다음 달부터 2, 3분 진료에 익숙한 많은 의사들이 15분 진료에 적응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9월부터 심층진료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의 모 교수는 평소대로 2, 3분 만에 진료를 끝낸 뒤 나머지 시간을 채우느라 환자 얼굴만 멀뚱히 쳐다봤다고 한다. 3분 진료에 익숙한 의사들에게 15분 진료는 ‘영화 러닝타임’ 수준이다.
환경이 변한 만큼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가르친 대로 진료하면 된다. 병력(病歷) 청취와 신체검진 등 교과서에 나온 대로 진료하시라! 이때 특히 조심해야 할 것은 전문용어가 아닌 환자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환자와 진정으로 소통할 수 있다. 환자와의 대화에 익숙지 않은 의사들을 위해 병원이나 정부에서 심층진료 시 어떻게 환자를 대해야 하는지 대화법이나 상황별 시나리오를 교육시킬 필요가 있다.
환자에게도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심층진료 시행 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이다. 경증 환자까지 심층진료를 받겠다고 대형병원으로 몰린다면 심층진료가 꼭 필요한 중증 환자들이 심층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병원의 환자 쏠림 현상을 유발하는 대표적 사례가 ‘닥터쇼핑’이다. 서울대병원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한 소아환자가 찾아왔다. 이미 큰 병원 두 곳에서 유전자검사와 영상학적 검사를 모두 받은 환자였다. 이 환자가 서울대병원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 검사 결과를 설명해 달라는 것이었다. 기존 병원이 검사 결과를 충실하게 설명해주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는 대표적인 과잉진료다. 환자가 원해 대형병원을 찾는 게 아니라 동네 의사가 필요성을 느껴 큰 병원을 찾게끔 해야 한다.
물론 암 등 중병에 걸렸다면 진료받는 병원의 검사 결과나 치료 방법을 두고 다른 병원 의사에게 ‘세컨드 오피니언(2차 의견)’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말을 듣기 위해 과도하게 많은 병원을 찾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심층진료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동네 의원 등에서 ‘심층진료용 진료의뢰서’를 받을 때 환자의 기록이 꼼꼼하게 들어가도록 요청해야 한다. 또 심층진료 시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한 만큼 미리 궁금한 사안을 메모지에 적어 중요한 순서대로 질문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2차 의료기관인 전문병원협의회에서도 최근 심층진료 참여에 적극적이다. 전문병원은 심뇌혈관, 수지접합, 화상, 관절척추 등에 있어서 의사의 수나 의료의 질이 대학병원 못지않다. 정부가 앞으로 진료를 한 시간만큼 진료수가를 받게 하는 첫 출발점으로서 심층진료를 잘 정착시키면 의료전달체계에서 1, 2차 의료가 강화될 뿐 아니라 국민 건강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