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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부패 숙청’ 사령탑… 시진핑 2기의 ‘칼잡이’

입력 | 2017-10-27 03:00:00

[中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열전]<2> 서열 6위 자오러지 기율위 서기




“왕치산(王岐山)이 움직이면 자오러지(趙樂際)가 바빠진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는 2014년 자오러지 신임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앙기율위) 서기의 역할을 상징적인 이 한마디로 표현했다. 반부패 사정기관인 중앙기율위는 2012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이후 250여 명의 고위 간부 등 당·정·군 간부 140만여 명을 부패 혐의로 숙청했다. 이때 중앙기율위 서기는 자오러지의 전임이자 시 주석의 오른팔인 왕치산이었다.

자오러지는 시 주석 집권 때부터 당 중앙조직부장이었다. 중앙조직부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매우 강력한 조직이다. 당·정 고위직은 물론이고 국유 기업, 언론사, 공립대학까지 4000여 명에 이르는 간부들에 대한 인사가 중앙조직부의 권한이다.

왕치산이 휘두른 칼날에 쓰러진 고위 관료들의 자리를 시 주석 측근들로 채우는 것이 자오러지의 가장 중요한 업무였던 것이다. 자오러지는 이 업무에서 시 주석에게 절대적인 충성심을 보였다. 인사 총책으로서 자신과 관계있는 사람들을 승진시킬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로지 시 주석의 측근 그룹을 요직에 진출시키는 데 집중했다. 올해 5월 시 주석의 최측근 차이치(蔡奇)가 베이징(北京)시 당 서기로 임명되도록 힘썼고, 이어 7월엔 충칭(重慶)시에서 시 주석 최측근이자 후계자로 거론된 천민얼(陳敏爾)의 충칭시 당 서기 임명을 공개했다.

왕치산이 반부패 사정을 대표하는 ‘얼굴’이었다면 자오러지는 ‘그림자’였다. 시진핑 권력집중을 위한 정적 숙청의 도구로도 사용된 반부패 투쟁에서 두 사람은 동전의 양면처럼 사실 하나였던 것이다.

2012년 중앙조직부장에 임명되기 전까지 시 주석과 특별한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최고지도부에까지 오른 가장 큰 원동력은 5년간 보여준 충성심이었다. 그는 또 빈곤 지역인 서부 칭하이(靑海)성과 산시(陝西)성 당 서기 경험을 바탕으로 시 주석의 내치 제1 목표인 빈곤 퇴치에도 조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충성심 덕분에 자오러지는 산시성 서기 때 오른팔이었던 웨이민저우(魏民洲) 전 산시성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주임이 8월 비리 혐의로 낙마했음에도 최고지도부에 올랐다.

자오러지는 시 주석과 산시성 동향이다. 칭하이성 시닝(西寧)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산시성 시안(西安) 출신이다. 할아버지 자오서우산(趙壽山)은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의 동료였고 자오러지의 아버지 자오시민(趙喜民)은 시중쉰의 부하였다. 이 때문에 자오러지를 산시성 출신 고위 관리와 석탄광산회사 임원들로 이뤄진 ‘산시방’의 대변인으로 보기도 한다.

자오러지는 산시성 서기에 오른 2007년 시 주석이 17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후계자로 지목되자 시중쉰 묘를 성역화했다. 시 주석이 문화대혁명 시절 하방(下放) 생활을 한 산시성 옌안(延安)시 량자허(梁家河)촌 성역화도 추진했다.

개인 능력도 탁월했다. 2000년 칭하이성 성장, 2003년 칭하이성 서기, 2007년 산시성 서기에 오를 때마다 최연소 성장, 서기 기록을 갈아 치웠다. 칭하이성은 그의 당 서기 시절 경제 발전 속도가 가장 빨랐다. 그의 산시성 서기 시절 산시성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5%에 달했다. 서부 빈곤 지역의 민생 문제를 해결했다는 평가와 함께 ‘친민(親民)서기’로도 불렸다. 당시 자오러지는 “빈곤 퇴치 과정에서 한 사람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칭하이성 서기 시절 티베트인들의 독립운동을 막은 점도 당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자오러지는 새 상무위원 가운데 60세로 가장 젊다. 5년 뒤 차기 상무위원에서 연임 가능성을 노릴 것이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던 ‘미스터리’의 사나이는 이제 시 주석 2기와 운명을 같이할 숙청의 검을 잡았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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