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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서동일]한국GM 카허 카젬 사장의 생뚱맞은 축하 화환

입력 | 2017-10-27 03:00:00


서동일 산업부 기자

해외 출장을 핑계로 ‘불출석사유서’를 내고 국정감사 출석을 피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많다.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쏟아질 게 뻔하고, 당황하는 표정도 생중계로 퍼지니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밖에 없다. 취임해 한국 온 지 2개월밖에 안 된 한국GM 카허 카젬 사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것은 그래서 조금 의외였다.

질문은 예상 가능했다. ‘한국GM 철수설’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자 출석 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카젬 사장이라고 몰랐을 리 없다. 9월 1일 공식 임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내부적으로 ‘철수설 논란이 증폭된 원인을 분석해 보고하라’고 주문했던 그다. GM인도 사장을 지내며 ‘쉐보레 인도 시장 철수’ ‘생산공장 일부 매각’ 등에 관여했던 자신의 이력이 철수설 증폭의 요인이라는 보고도 이미 받았다.

“이 자리에서 철수설에 대한 답을 주시겠습니까?”(바른정당 지상욱 의원)

“한국GM 경영진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회사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카젬 사장)

카젬 사장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최소한 유의미한 메시지를 들고 오지 않을까’란 기대는 첫 답변부터 깨졌다. “철수나 매각은 없다는 뜻인가” “예, 아니요로 답해 달라” 등 질문 방식을 바꿔 재차 물어도 답변은 같았다. 종이에 적힌 글을 읽듯 표현마저 똑같았다.

인천 부평과 전북 군산에 모여 있는 한국GM 생산직과 1, 2, 3차 협력업체 사이에선 “안 나오느니만 못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한 협력업체 사장은 국정감사 뒤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히려 걱정과 불안감만 커졌다. 위기에 빠진 한국GM 다 같이 살려보자며 바삐 움직이고 있다. 그런 사람들 수만 명이 지켜보고 있는데 형식적인 답만 반복하니 마치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처럼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인천 중소·중견기업 모임 인천비전기업협회는 한국GM을 살리자며 회원사를 대상으로 쉐보레 마케팅 활동을 준비 중이다. 인천시, 인천상공회의소는 한국GM 철수설로 위기에 빠진 인천 자동차 산업 생태계의 공동대응 방안을 찾기 위한 컨트롤타워 ‘인천자동차발전협의회’도 만들었다. 인천 부평구 등은 토론회도 열었다. 군산시는 쉐보레 판매 촉진을 위해 길거리로 나가 릴레이 홍보 중이다. 군산시는 한국GM 차 사주기 시민운동을 벌인다고 한다. 3년간 약 2조 원 안팎의 누적 적자를 기록한 한국GM을 살려보겠다고 발 벗고 나선 지역사회 노력을 카젬 사장이 알았다면 그렇게 답할 수 있었을까.

아마 모르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달 19일 인천자동차발전협의회 창립총회가 열린 인천상공회의소 대강당 무대 위에는 카젬 사장이 보낸 화환만 놓여있었다. 한국GM 탓에 지역경제가 위태롭게 흔들리니 대책을 찾자며 모인 행사의 성격을 이해했다면 축하 화환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총회에 참석한 한국GM 관계자들이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이날 주요 인사 모두발언 중 ‘축하’라는 단어를 쓴 건 한국GM에서 참석한 임원이 유일했다. 모두 “그동안 공동대응할 조직도 없었다니 반성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카젬 사장이 임기를 시작한 뒤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금까지 두 번이다. 두 번 다 “경영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교과서적인 발언만 했다. 세 번째 모습을 보일 때는 한국GM을 살려보겠다고 애쓰는 지역사회 노력에 최소한 고마움이라도 표시했으면 한다.
 
서동일 산업부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