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일학년 때였다.
차부(車部)에서였다. 책상
위의 잉크병을 엎질러 머
리를 짧게 올려친 젊은
매표원한테 거친 큰소리
로 야단을 맞고 있었는데
누가 곰 같은 큰손으로
다가와 가만히 어깨를 짚
었다. 아버지였다.
예전에는 많은 관계가 지금보다 따뜻했다. ‘따뜻’이라기보다 믿음이라고 해야겠다. 누가 가르쳐서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냥 알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할 것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대다수의 마음이 생각했다.
이 모든 관계의 따뜻함이 줄어들고 있다.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전부 빡빡해진대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관계가 하나 있다. 바로 가족의 관계다. 세상이 자꾸 차가워지니까, 상대적으로 가족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세상에 내 편이 없어질수록 적은 내 편은 가치 있게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가족을 해쳤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더 분노하고 소름 끼쳐 한다. 마음이 의지하는 최후의 지지선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는 어떠할까. 신뢰의 종말은, 지구의 종말만큼이나 무섭다.
무서운 탓에 이시영 시인의 시를 읽는다. 추운 시대여서 더 뜨끈하게 읽는다. 여기 등장하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은 아직 교복이 헐렁한 어린애다. 그런 어린애가 사소한 실수를 했다. 야단맞는 아이의 모습이 짠하다.
과도한 질책을 받는 아이를 건져준 것은 아버지였다. 자신을 감싸준 아버지의 손은 엄청 크고 따뜻했다. 말하자면, 삶의 빛이 된 손이랄까. 이후로 아이는 아버지의 손을 닮으려고 노력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영화 ‘킹스맨’에서는 ‘매너가 신사를 만든다’고 했다. 이 시에도 비슷한 명언이 깃들어 있다. ‘좋은 어른이 좋은 어른을 만든다.’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