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청산에 갇힌 대한민국]<2> 靑드라이브에 정부기관 몸살
7월 20일 대통령비서실이 정부기관에 발송한 적폐 청산 관련 공문.
○ 적폐, 개선, 개혁, 혁신… 이름부터 중구난방
국무총리실, 기획재정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국가보훈처 등 9곳은 관련 기구가 없다. 정부 부처와는 별도로 감사원도 청와대가 공문을 발송하기 하루 전 ‘감사혁신·발전위’ 첫 회의를 열었다. 감사원은 독립성 논란 탓인지 ‘권력기관의 감사 기능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2014년 ‘혁신위’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 셀프 조사, 문건중계 등 위법, 월권 논란
정부기관은 ‘VIP(대통령) 국정운영 5개년 계획발표’를 기구 설립 근거로 들었다. 당시 100대 국정과제 중 첫 번째가 ‘적폐의 철저하고 완전한 청산’이었다. 하지만 법령 정비 전에 기구가 먼저 출범해 위법, 월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운동가와 시민단체 출신이 외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찰에서는 이들이 점령군 노릇을 한다는 불만이 있다. 인권 침해 여부를 확인한다며 범죄첩보분석시스템(CIAS) 등 경찰 내부정보망 10여 개를 열람하겠다고 나섰기 때문. 경찰 내부에선 “(위원회 활동을 보며) 20년 경찰 생활하면서 가장 참담한 순간이다”라는 불만과 “수사권만 준다면 뭐든 다 내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정원도 최근 외부위원들이 비밀취급인가를 얻기 전에 두 달 동안이나 비밀자료를 열람한 사실이 최근 본보 보도로 드러났다.
올해 초까지 국정 교과서 현장 적용을 밀고 나갔던 교육부 직원들은 내부에서 ‘부역자’가 아닌 ‘징용자’로 불린다고 한다. 정권 교체 이후 입장이 뒤바뀐 교육부는 자체 조사로 직원을 고발하면서 ‘셀프 조사’ 비판에 직면해 있다.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내부 문건이 외부에 중계되다시피 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표적’ 세무조사를 조사 중인 국세청은 중간 논의 과정은 공개하지 않고 최종 결과만 공개하기로 첫 회의 때 합의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사회적 갈등만 키울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활동 시한도 쟁점…총리실 컨트롤기구 구성 논의
활동 기간 연장 여부도 불투명하다. 국방부 군 적폐청산위는 연말까지만 활동한다.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사실상 군 전반의 모든 문제를 총망라하고 있는데 2개월 만에 어떻게 해결이 되겠나. 저 많은 문제를 다루려다 보면 결국 명목상의 위원회로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올해 안에 최종 보고서를 내고 마무리할 계획이다. 한 위원은 “언제까지나 예전 일을 들여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내부 사정을 전했다.
총리실은 컨트롤타워 같은 기구를 아직까지 운영하지 않고 있다. 최병환 국무조정실 1차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정부 차원의 적폐청산 작업은 부처별 TF가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다. 어느 정도 적폐청산 성과가 나면 이를 종합하는 역할이 필요할 수 있고, 차후 성과가 나면 더 구체화된 기구 논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최영진 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는 "불법적인 일은 사법부가 담당하는게 맞지만 행정부는 미래지향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는 “(부처별 기구 대신) 청와대 직속하에 포괄적인 ‘전환기 정의 세우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유근형 noel@donga.com·조동주 / 세종=박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