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털이 나고 발이 넷인 것은 같지만 동산의 사슴이 말이 될 수는 없고 깃이 있고 날개가 둘인 것은 같지만 들새가 난새가 될 수는 없다
毛而四足則同 而園鹿終不能爲馬 羽而兩翼則同 而野鳥終不能爲鸞
(모이사족즉동 이원록종불능위마 우이양익즉동 이야조종불능위난)
― 김의정 ‘잠암일고(潛庵逸稿)’》
이렇듯 속이려 한 것이 아닌데도 비슷하여 사람들을 해치기도 하는데, 속이려고 작정을 하고 진실인 양 행세하는 경우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에 속고 또 해를 입겠는가. 완전히 다른 것은 우리가 쉽게 살펴 알 수 있지만 교묘하게 꾸며 진짜처럼 행세하는 경우 가짜를 진짜로 오인하여 속아 넘어가기가 쉽다.
비슷하지만 아닌 것이 바로 ‘사이비(似而非)’이다. 사이비라는 말은 흔히 종교와 연관 지어 얘기되지만, 사이비가 어디 종교뿐이겠는가.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이 말로는 그럴싸하게 국민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자신의 사욕만을 챙기는 경우 이름은 국회의원이지만 결국 사이비이고, 국민의 안위를 지켜주어야 할 경찰이 국민의 생명은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비리를 옹호하기만 한다면 경찰 제복은 입었지만 이들도 결국 사이비이고,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야 할 스승이 학생들 위에 군림하여 학생들에게 착취와 폭력을 일삼는다면 선생님이라는 소리는 들을지언정 이들도 결국 사이비이다.
사슴이 제아무리 말이라고 주장한들 말이 될 수 없고 들새가 제아무리 신성한 체하여도 난새가 될 수 없듯이, 자신들이 아무리 국회위원이고 경찰이고 선생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본분에 맞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결국 사이비에 불과할 뿐이다. 비슷한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잠깐은 속일 수 있을지라도 사이비는 가짜일 뿐 진짜가 아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