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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말 잘 듣게 하려면 부모 먼저 말조심해야

입력 | 2017-11-01 03:00:00

<41> 사춘기의 대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부모 손에 끌려 억지로 진료실을 찾은 중학교 2학년 아이가 의자에 삐딱하게 앉았다. 아이는 연신 “아이 씨”거렸다. 엄마는 나와 아이를 번갈아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아빠는 아이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큰소리로 “야, 야, 똑바로 앉아. 똑바로!” 했다. 나는 부모에게 그냥 두라고 했다. 아이에겐 “그래, 오기 싫을 수도 있지. 그냥 편하게 앉아도 괜찮아. 이런 걸로 네 진심이 전달되지 않는 건 아니니까”라고 말했다. 아이는 조금 자세를 고쳐 앉았다.

사춘기 아이들을 대할 때는 정말 말을 조심해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말의 내용보다 표현에 더 민감하다. 부모의 말이 거칠어지면 질수록 말을 더 안 듣는다. 아이가 말을 조금이라도 듣기를 원한다면 다음 몇 가지를 기억했으면 한다.

첫째, 되도록 말수를 줄인다. 사춘기 아이 앞에서는 말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한 번 말할 때 한두 문장 정도로 짧게 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되도록 한자리에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하지 않도록 한다. 사춘기 아이는 되도록 아이와 거리를 두고 독립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줄여 개입을 자제하는 편이 좋다.

사춘기 문제가 심해지는 원인 중 하나에는 부모가 거꾸로 움직이는 것이 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미처 신경을 못 쓰다가 사춘기가 되어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큰일이다 싶어 아이를 유심히 보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거리를 둬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막 달라붙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아이의 문제는 심해지고, 부모와의 관계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명령 대신 제안을 한다. 아이에게 말할 때, “∼해!”가 아니라 “∼해볼래?” 혹은 “그래 줄래?”라고만 해도 말을 훨씬 잘 듣는다. 집에 빨리 들어오라고 할 때도 “빨리 안 들어와?”보다는 “이제 들어오지 않을래?” 하고 얘기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고 아이가 곧바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관계에는 도움이 된다. 이와 더불어 사춘기 아이들이 명령만큼이나 기분 나빠 하는 것이 목청 높여 “야! 야! 야!” 하는 것이다. 아이를 부를 땐 “야!” 하지 말고 되도록 이름을 불러준다.

셋째, 아이가 “알았다고요”라고 대답해도 그냥 넘어간다. 보통 이 시기 아이들은 “네, 알겠어요”라고 고분고분 대답하지 않는다. “알았다고요”라는 대답은 사실 “생큐”와 진배없다. ‘왜 말을 저따위로 해’라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자. “알았다는 애가 그렇게 행동해?”하며 도발하지도 말자. ‘알겠다고 했으니 이제부터는 노력하겠지’ 하며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사춘기 아이들의 그 말에는 나름대로 큰 의미가 담겨 있다. 부모에게 대들지 않으려고 자꾸만 반항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 것이기 때문이다. 그걸 건드려선 안 된다. 잘못하면 폭발해 버린다. “알았다고요” 하고 조금 짜증을 부려도 “그래, 알았으면 됐어” 하고 고마워해야 한다.

넷째, 절대 소리 지르지 않는다. 소리를 지르는 것은 자기가 빨리 힘의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뺏길 것 같다는 두려움과 위기감 때문이다. 그런데 사춘기 아이들은 자기를 억누르려는 타인의 의도와 말투, 행동에 상당히 민감하다. 부모가 소리를 질러서 아이를 억누르려고 하면 아이는 더 반항하게 되어 있다.

다섯째,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간단하게 한다. 아이가 늦게 오면 “일찍 다녀라” 하고 짧게 말한다. 한마디 더 보탠다면 “이렇게 늦게 오면 가족이 걱정하잖니” 정도만 해야 한다. 아이가 게임하느라 책상 앞에서 밥을 먹겠다고 하면 “식사할 때는 같이해야지” 하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도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간다. 억지로 시키려고 실랑이를 벌이다 보면 아이와 감정의 골만 깊어진다.

여섯째,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이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했다면 그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켜야 한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애초부터 그런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심을 못 잡고 일관성 없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면 그것이 부모의 약점이 된다. 아이가 부모의 약점을 잡아 무기로 휘두를 수도 있다.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데는 굉장한 인내심과 내공이 필요하다. 아이의 문제를 옆집 아이 문제 대하듯 조금은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거리를 두고 봐야 한다. 그리고 약간의 반항기는 담대하게 장난치듯 받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부모와 아이, 서로를 위해서 여러모로 좋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