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이형삼 전문기자
“건설비가 정부 예산의 30% 규모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보증을 서도 차관을 주겠다는 나라가 없어 미국과 영국에 설비와 시공을 나눠 맡기는 조건으로 겨우 들여왔다. 그런 형편이니 건설현장 상황이 어땠겠나.”
마을 여인숙에 건설사무소 간판을 달았다. 창고에 칸막이를 치고 사무실로 썼다. 현장 식당 점심에 콩나물국이 나오면 다들 “저녁은 콩나물무침이네…” 했다. 100% 적중했다. 점심 때 남은 콩나물국에서 콩나물을 건져 무쳐 냈다. 엉성하게 온돌을 깐 숙소에서 한 이불 덮고 칼잠을 자다 단체로 연탄가스를 맡았다. 날마다 흙먼지를 덮어썼지만 샤워는 꿈도 못 꿨다. 유일한 낙은 어쩌다 주말에 기차 타고 부산 가서 목욕하고 ‘청요리’ 한 그릇 먹고 오는 것이었다. 원자로 제어반(盤) 시뮬레이터를 살 돈이 없어 제어반 버튼 사진을 합판 위에 오려 붙인 모형으로 운전 요원들을 훈련시켰다. 그런 여건에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눈에 불을 켜고 뛰어다녔다. 그 덕분에 고리 1호기는 준공 직후부터 우리 힘으로 운영했다.
“언제까지(on schedule), 얼마를 들여(in budget), 어떤 품질(of quality)의 결과물을 만들 것인가를 체계적으로 따지는 PM은 산업화 초기엔 생소한 개념이었다. 턴키 방식인 고리 1, 2호기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3, 4호기부터는 PM을 본격화했다. 국책사업이 공기(工期)와 예산을 기약할 수 없던 시절에도 원전은 예외였다. 이후 PM이 산업계 전반으로 보급됐다. 해외에서 하청계약이나 수주하던 건설업체들이 요즘은 설계-구매-시공-운영 일괄 주계약자로 사업을 따낸다. 원전은 발전(發電)에만 기여한 게 아니다.”
6월 19일은 고리 1호기 초임계 40주년이었다. 이날 고리 원전에선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이 열렸다. 생일상 대신 안락사 선고. 고리 1호기 주역들의 노고를 치하하는 장면은 없었다. 여러 날 뒤 한국수력원자력 고위 간부가 이종훈 전 사장 등을 서울의 음식점으로 초대해 밥을 사면서 공로패를 전달했다. 패에 새겨진 날짜는 6월 19일이었다. 행사 당일에 주려고 만들었다가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했다.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상징적 조치다. 60년 앞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에너지 믹스 구상을 5년짜리 정부가, 출범 1개월 만에, 주무장관도 지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였다. 가동 정지는 지난 정부가 결정했지만, 지난 정부의 많은 결정에 적폐 딱지를 붙이던 새 정부가 이것만은 즉각 승계했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결정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 꺼내 든 상징적 카드 또한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였다. 이 전 사장은 “원전은 원자핵공학, 토목공학, 건축공학, 전자공학, 제어계측공학 등을 아우르는 종합 엔지니어링의 산물이다. 섣부른 탈원전 정책이 우리 공학계 전체에 좌절을 안길까 봐 걱정스럽다”고 했다.
대통령은 오래된 원전을 세월호에 비유해 원전맨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세월호는 오래돼서가 아니라 과적, 평형수 조작, 무리한 선실 증축 같은 안전 비리 때문에 침몰했다. 고리 1호기는 안전 문제로 설계수명 재연장이 불허된 게 아니며, 월성 1호기도 안전에 문제가 없어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원전은 원자로를 제외한 모든 부품을 새것으로 교체할 수 있어 노(老)원전이 곧 노후(老朽) 원전인 것은 아니다. 2012년 11월, 계속운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빚어진 월성 1호기를 방문했을 때 만난 간부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형삼 전문기자 han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