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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 더 동아/11월 2일]동아일보, 일제강점기때 ‘협동조합 설립’ 강조…왜?

입력 | 2017-11-01 13:57:00


서울시에서 제작·배포한 협동조합 설립 독려 포스터


“경제상으로 우리 조선 사람이 아무리 군핍(窘乏·필요한 것이 없거나 모자라 군색하고 아쉽다)하다 하더라도 소비조합에 고본(股本·출자금) 10원 낼 금전은 있으니 우리도 곳곳에 이런 조합이 생겨야만 아주 절명(絶命·목숨이 끊어짐)을 면할 것이다.”

동아일보는 1922년 11월 2일자 1면에 실린 ‘소비조합(消費組合)’이라는 기사를 통해 이렇게 강조했다. 이 기사는 “영국의 소비조합은 경탄할 만치 대규모로 경영한다”며 “그 시초로 말하면 1884년 록델(로치데일) 시에서 직조공 28인이 조직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요즘 협동조합 설립을 독려하는 단체에서 스페인 프로축구 팀 ‘FC바르셀로나’나 감귤(오렌지) 재배 협동조합 ‘선키스트’, 세계적인 비영리 통신사 ‘AP’ 등 협동조합 성공사례로 거론하는 것처럼, 창간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던 동아일보 역시 ‘국제적인 시각’으로 협동조합을 소개한 것이다. 이 로치데일 협동조합은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협동조합 시초로 꼽는 단체다.

소비조합 설립을 독려한 1922년 11월 2일자 동아일보


일제강점기 동아일보는 ‘경제적 독립운동’ 차원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강조했다. 조선총독부에서 금용조합과 산업조합 등 식민 통치 목적으로 ‘관제조합’을 만들자 이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자생적인 협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것. 이후 동아일보는 1932년 창간 12주년 기념사업으로 ‘전조선협동조합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국가가 했어야 할 일을 동아일보가 했던 셈이다.

“조합 수 총 97개, 조합원 총수 4만 여 명, 조합 자금 42만 원(현재 약 74억 원)이어서 단기간에 발전한 운동으로서는 다대한 수확을 보았다 하겠다. 더욱 전 조선에 유명한 평안협동조합과 기타 유수한 조합이 조사에서 설루(洩漏)되었는바 이것은 사정에 의한 것이니 만일 충분한 조사를 완성하면 사실상의 숫자는 이의 배(倍)나 되지 않을까 한다.”

‘협동조합 조사 발표에 제(際)하야(즈음하여)’라는 제목의 1932년 4월 2일자 동아일보 사설


이렇게 자생적인 협동조합 설립 운동이 독립운동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가 대대적인 해산 작업에 나서면서 이 시기 많은 협동조합이 명맥이 끊기게 된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협동조합 가운데 제일 유명한 협동조합을 꼽으라면 역시 ‘서울우유협동조합’이다. 1938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는 서울우유가 ‘경성우유동업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이틀 전(1938년 7월 11일) 설립 인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서울우유 설립 인가 소식을 전한 1938년 7월 13일자 동아일보 기사(오른쪽). 왼쪽을 보면 당시에 이미 주식(株式)시장도 인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방 후에도 협동조합은 인기였다. 각 리(里)나 동(洞)마다 ‘이동(里洞)조합’이라는 이름으로 협동조합을 만드는 일이 흔했다. 1957년에는 이를 지원하는 협동조합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정희 군사정권에서 협동조합 설립을 사실상 억압하면서,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을 다시 만들기 전까지 한국에서 협동조합은 사실상 암흑기를 보내야 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