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 외모를 지닌 바둑캐스터 김여원은 본연의 이미지와는 달리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해 강인함을 마음껏 표출하곤 한다. 움직이는 것조차 싫어하던 그에게 운동은 이제 ‘도전’이 됐다. 사진제공 ㅣ 김여원
■ 피트니스 퀸이 된 ‘바둑캐스터’ 김여원
1년전 체력 걱정에 난생 처음 헬스장 출입
바둑도 운동도 성과 바로 나타나지 않지만
힘든 순간 견뎌내면 그때 느끼는 희열 대단
피트니스 대회 비키니 입어 고민도 했지만
‘할 거면 제대로 하자’…최고성적 6위까지
청순한 외모와 말투를 지닌 바둑 캐스터 김여원(30)의 첫 인상은 구릿빛 피부에 비키니를 입고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피트니스 대회 사진 속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바둑 방송에서 차분한 목소리로 해설자를 도와 각 수의 흐름을 읽어주는 그는 최근 남편인 프로기사 박정상 9단과 호흡을 맞추는 ‘제1회 한국제지 여자 기성전’에선 발랄한 매력도 감추지 않는다. 이처럼 방송과 일상에서는 여성스러운 면이 훨씬 많지만, 운동 앞에서는 개인적인 취향까지 전부 포기할 정도로 강인해진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특유의 승부욕이 그를 두 갈래로 나눠놓았고,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꿈의 세계로 이끌었다.
헬스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해 11월이었다. 평소 움직이는 것을 싫어해 방송 없이 쉬는 날이면 하루 온종일 집에서 뒹굴거리곤 했다. 그러다 점차 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꼈고, 생애 처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오직 건강을 위해서였다. 처음엔 당연히 강도도 약했다. 일주일에 한 번 헬스장을 찾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운동에서 바둑과 비슷한 매력을 느꼈다. 보통 운동은 활동적인 것으로, 바둑은 정적인 것으로 분류되지만 둘 모두 인내와 절제가 필요하다는 점에선 똑같았다. 그로선 바둑알을 집어든 7세부터 프로 입단을 준비하기까지 바둑과 동고동락하며 셀 수없이 경험해온 것들이었다. 기다림 끝에 찾아오는 성취감을 가장 좋아하고, 또 잘 견뎌낼 자신도 있었다.
“바둑은 마인드 스포츠다. 정신적으로 방해가 될 요소들은 미리 차단을 하는데, 모든 것을 절제하고 오직 바둑에만 매진한다. 운동도 비슷하다. 성과가 지금 당장 보이지 않는다. 고통을 감내하고 음식에 대한 욕심을 절제해야한다. 그러면 서서히 몸속에서 근육이 쌓이고 지방은 빠진다. 운동을 하다보면 힘들 때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든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동작 한 번이라도 더 했구나’하며 느끼는 희열이 있다.”
지난 10월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한 김여원의 뒷모습. 그는 “운동을 시작한 이후 등이 가장 발전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사진제공 ㅣ 김여원
● 나를 버리고, 나를 찾는다
막상 도전하기로 결심하니 포기해야할 것들이 무수히 뒤따랐다. 첫 번째론 음식이었다. 김여원은 밀가루를 좋아한다. 빵을 비롯한 각종 디저트 마니아다. 운동을 시작하기 전엔 남편과 서울에 있는 여러 우동 맛집들을 돌아다니며 둘만의 순위를 매기는 것이 취미였다. 하지만 대회를 준비하면서부터는 탄수화물을 최대한 멀리해야했다. 매일 3시간씩 운동을 하면서 고구마와 닭 가슴살을 주식으로 삼았다. 김여원은 “하루의 시작이 도시락을 싸는 거였다. 식단 관리가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아끼던 새하얀 피부와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피부가 어두울수록 근육이 더 잘 보이기 때문에 비키니 선수에게 태닝은 필수였다. 하얀 피부는 감점 요인이었다. 처음엔 “코치님 저는 정말 태닝이 싫어요. 안 할래요”라고 우겼던 김여원은 10월 초 대회에 처음으로 출전해보고선 마음을 고쳐먹었다. 사진과 영상으로 남은 운동의 결과물이 실망스러웠다. 피부를 더 검게 만들기 위해 바르는 탄이 잘 스며들지 않아 색이 울긋불긋 했다. 그는 “사진을 보니 모든 것이 어정쩡했다.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운동을 하면서 개인적인 취향은 다 포기했다. 대신 전문적인 시선으로 보게 됐다”고 했다.
사진제공|김여원
● 취미냐고? 난 진지해!
피트니스 대회에 출전하는데 대해 주변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한 때는 김여원도 고민했던 노출 때문이다. 특히 선수들이 열심히 만들어낸 근육을 보여주기 위해 취하는 규정 자세들을 두고 누군가는 “남사스럽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김여원에겐 상처가 됐다. 그럴 땐 남편이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다. 김여원은 “처음엔 마냥 싫어하기만 했는데, 남편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첫 대회 때는 직접 대회장에 찾아왔다. 그냥 ‘아내가 비키니를 입었다’ 이게 아니라 전문적인 선수로 봐 주더라”고 고마워했다.
“사실 여자가 이렇게 지방을 다 빼고, 근육을 자랑하는 게 예쁘지는 않다. 그런데 예쁜 것과는 별개로 내가 이렇게 노력했다는 것 아닌가. 운동이나 식단 관리를 하면서 인내하고 절제하는 과정들을 즐기고 있다. 내게 운동은 도전이다.” 아마추어 바둑기사 시절 “공격적인 성향이었다”는 김여원은 타고난 승부사의 기질을 감출 수 없나보다.
서다영 기자 seody306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