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결정 이어가는 최태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과감한 투자와 조직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달 열린 ‘SK CEO 세미나’에서 최 회장이 연단에 올라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다. SK 제공
1일 SK의 석유화학계열사 SK이노베이션은 주주들이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전자투표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전자투표제란 주주총회가 열릴 때 주주가 외부에서 인터넷으로 접속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기존에는 주총 현장에 참석하거나 타인에게 권리를 양도한다는 위임장을 써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 절차의 번거로움 때문에 대부분의 소액주주는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기 일쑤였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전자투표제 도입을 결정하고 내년에 열리는 제11차 정기 주주총회에서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현 정부는 전자투표제를 도입하도록 적극 권장하고 있지만 기업들은 대체로 도입을 꺼리고 있다. 전자투표제로 소액주주들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 경영에 부담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대주주 위주의 경영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이날 SK이노베이션은 대규모 설비투자 계획도 함께 발표했다.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울산 CLX에 2020년까지 1조 원을 들여 감압 잔사유 탈황설비(VRDS)를 세운다고 밝혔다. ‘탈황’이란 원유에 있는 황 성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황은 대표적인 환경오염 물질이기 때문에 황을 얼마나 제거하느냐가 석유제품의 품질과 친환경성, 부가가치를 결정한다. 잔사유는 원유에서 휘발유, 경유 등을 한 번 뽑아내고 남은 기름을 말한다. 2020년 완공될 VRDS는 하루 생산량이 4만 배럴에 달할 예정이다.
SK의 잇단 대규모 투자와 새로운 시도는 최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으로 한국 기업들이 타격을 입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중국과의 합작 규모를 늘리고 투자를 확대하는 ‘역발상 승부수’를 날려 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 정세를 보면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곧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의 판단이 옳았다”고 말했다.
최근 SK는 반도체 자회사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삼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상태이고 현대차그룹은 중국 판매 감소와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로 실적이 부진하다. LG는 스마트폰 사업 부문의 실적 저조로 모바일커뮤니케이션(MC)사업부가 10개 분기 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사드 직격탄을 가장 앞에서 맞은 롯데는 중국에서 마트 사업을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SK만 유독 악재 없이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SK는 올해 초에도 총 17조 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그중 국내 시설투자가 11조 원이었다. 최 회장은 8월 열린 SK 이천포럼에서 “존경받는 기업, 기술을 선도하는 기업이 되려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열린 ‘SK CEO(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는 “사회적 가치 창출은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영리기업의 존재 이유로 바뀌고 있다”고도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꺼리는 전자투표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한 것도 최 회장의 이런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