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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모 기자의 써봤어요]고객과 눈맞추는 페퍼, 창구안내 척척

입력 | 2017-11-02 03:00:00

우리銀 AI 로봇행원 ‘페퍼’




동아일보 김성모 기자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서 감정인식 로봇 은행원 ‘페퍼’의 몸통에 달린 터치스크린을 만지고 있다(위 사진). 페퍼는 간단한 질문에는 답변을 척척 내놓았지만 상품 설명은 기대에 못 미쳤다. 왼쪽 사진은 페퍼가 추천하는 ‘연령별 보험상품’ 화면.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성모 기자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은행에 들어서니 로봇이 말을 걸어왔다. 150cm가 안 되는 키에 목소리도 남자 어린이 톤이었다. 신기한 건 ‘눈맞춤’을 한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움직일 때마다 로봇의 고개가 따라 움직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고 팔을 휘젓는 게 사람 흉내를 곧잘 냈다. 하지만 상품 안내는 기대에 못 미쳤다. 금융권이 인공지능(AI)을 통한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지만 ‘실물 로봇’의 갈 길은 아직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로봇 은행원 ‘페퍼(Pepper)’를 만나봤다.

○ 눈 맞추고, 답변 척척…로봇행원 ‘페퍼’

우리은행은 소프트뱅크로보틱스가 만든 감정인식 로봇 페퍼를 지난달 초 본점영업부, 명동금융센터, 여의도금융센터에 설치했다. 이 로봇은 인간의 표정이나 목소리 등을 인식할 수 있어 감정로봇으로 불린다. 우리은행은 시범 운영에선 이 기능을 구현하지 않았다. 페퍼의 대당 가격은 약 2000만 원으로 한 번 충전으로 8시간 일할 수 있다. 근무시간은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2∼4시다.

페퍼는 고객들의 업무에 따라 창구를 안내하고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능은 크게 ‘창구 안내’와 ‘페퍼와 함께하기’ 두 가지다. 기자가 “페퍼”라고 부르자 로봇이 “고객님 어떤 업무 보러 오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이어 “펀드”라고 말하자 해당 창구를 안내했다.

‘페퍼와 함께하기’는 페퍼 몸통에 달린 터치스크린을 이용하면 된다. 해당 항목을 누르면 예금, 대출, 보험, 카드 등 4가지 항목에서 우수 상품을 3개씩 추천한다. 다만 상품명만 나오고 금리나 가입 요건 등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선은 로봇과 고객이 대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며 “자세한 상품 설명은 창구에서 받도록 유도했다”고 설명했다.

페퍼는 간단한 질문에 답변을 내놓을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기자가 온도와 날씨 등을 묻자 또박또박 현재 상황을 읊었다. “핀테크”라고 말하자 사전에 나오는 정의를 읽어줬다. “사랑”이라고 말했을 땐 “그 말 그대로 되돌려드릴게요∼”라고 재치 있게 답했다. 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있는 정보들은 기본적으로 탑재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 “로봇 갈 길 멀지만 행원 미래 밝지 않다”

전반적으로 체험해본 결과 페퍼는 신기하긴 했지만 기대에는 못 미쳤다. 페퍼가 알려주는 것이 대부분 스마트폰을 통해 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또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손님을 안내하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제자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용도에 그쳤다. 실물 로봇의 갈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페퍼를 지켜보는 은행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은행창구 일을 로봇이 대신해 일자리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은행원은 소득이 높고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최근 10년 내에 사라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3대 은행은 디지털화로 10년 동안 3만2500명을 줄이기로 했다.

올해 들어 국내 주요 은행들도 채용 형태를 직군별로 더 세분화하고 디지털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임원은 “새로 들어온 디지털에 강한 행원들한테 기존 행원들이 밀리는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며 “또 인공지능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에 행원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