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 산업부 기자
최근 중소벤처 분야의 한 전문가가 탄식하며 한 말이다. 새로 탄생한 중소벤처기업부를 중심으로 창업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과 정책을 쏟아내지만 좀처럼 창업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는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정부가 내놓은 창업정책은 나무랄 데가 없다. 미국, 이스라엘의 창업정책을 벤치마킹해 펀드 조성부터 초기벤처 육성, 글로벌 진출, 기업인 재기까지 구색을 모두 갖췄다. 벤처펀드는 올해만 약 3조8000억 원에 달해 역대 최대다. 벤처기업 수는 이미 지난해 3만 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능력 있는 젊은이 상당수가 여전히 대기업 입사 시험장으로 몰리고, 서울 노량진 주변을 맴도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부가 마중물을 퍼부어도 펌프가 물을 뿜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창업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우리 사회는 약하다. 가령 카카오는 2015년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인 김기사를 626억 원에 인수했다. 앞서 구글이 김기사와 기술적으로 유사한 웨이즈를 1조1500억 원가량에 사들인 것에 비하면 헐값이다. 국내에서도 여유자금이 있는 대기업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M&A)에 경쟁적으로 뛰어들면 벤처기업의 대박이 가능하다. 하지만 자칫 기업 M&A에 나섰다가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비판에 휩싸인다. 네이버처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 되면 각종 규제로 M&A조차 망설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기술 탈취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과는 별개로 적정 가격에 벤처기업을 사들일 수 있는 인센티브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정부가 벤처 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중·장기 정책으로 큰 상금을 건 공상과학(SF)소설 공모전을 열 것을 제안하고 싶다. SF를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 적극 투자해 수준 높은 영상물을 만들어도 좋다. 공상과학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읽고 자란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화성 이민을 목표로 우주선 개발업체인 스페이스X를 창업했다. 지하 진공 터널로 열차를 이동시키는 하이퍼루프(Hyperloop) 프로젝트도 자라면서 접한 공상과학적 상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이다.
임기 내에 창업을 늘리고 일자리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정부는 이런 정책에 손사래를 칠 수 있다. 하지만 단기적 성과에 집착해서는 한국을 혁신창업이 주도하는 국가로 만들 수 없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창업 하드웨어를 구축했다면 문재인 정부는 창업 소프트웨어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리고 그 열매는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결실을 맺게 된다. 이게 바로 창업정책의 혁신이다.
정세진 산업부 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