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70)은 어릴 때부터 두 가지 결점(?)이 있었다. 안경을 벗으면 사실상 맹인에 가까운 나쁜 시력과 둔한 운동 신경이다. 그는 2003년 출간한 자서전 ‘살아있는 역사(Living History)’에서 관련 일화를 자세히 기술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인간을 달에 보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던 1960년 대 초. 똑똑하고 공부 잘하기로 유명했던 14세 소녀 힐러리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지원 편지를 보냈다. 돌아온 답은 “우리는 여성을 우주 비행사로 선발하지 않는다”였다.
야심만만한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물론 내 형편없는 시력과 운동신경 때문에 남성이라 해도 떨어졌겠지만 어쨌든 그건 내 인생 최초로 겪은 좌절이었다.”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예쁘게 보이려 안경도 쓰지 않고 나간 골프장. 가뜩이나 작은 골프공이 제대로 보일 리 만무했다. 남학생에게 “나 너 때문에 일부러 안경을 안 쓰고 나왔다”는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그는 어렴풋이 흰색으로 보이는 물체를 공으로 여겨 골프채를 휘둘렀다. 순간 흰색 부스러기들이 팝콘처럼 공중에 흩어졌다. 그가 때린 건 흰색 버섯이었다.
성인이 된 클린턴 전 장관은 정식 레슨도 두 차례나 받고 콘택트렌즈를 끼고 골프장에 나갔다. 하지만 골프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자서전에도 ‘골프는 좋은 산책을 망치는 운동(Golf is a good walk spoiled)’이라는 말에 십분 공감한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반면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골프 마니아였다. 다만 그도 실력은 별로였다. 골프장에 자주 나갔지만 첫 티샷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면 없었던 일로 하고 다시 치는 ‘멀리건’을 즐기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셀프 멀리건’을 하면서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면을 했다”는 농담도 즐겼다.
골프에 대한 부부의 ‘따로국밥’은 미 매사추세츠 주의 고급 휴양지 마사스 빈야드(Martha‘s Vineyard) 섬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고향 아칸소 주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던 오랜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고 클린턴 전 장관은 독서와 수영을 즐겼다.
골프 애호가인 친구는 이를 두고 “골프를 쳤으면 미국 대통령과 최소 4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 반면 조깅은 길어야 20~30분 아니냐. 미국 대통령을 독점할 4시간을 그렇게 버리다니 말이 안 된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한국 대통령은 억지로라도 미국 대통령과 골프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무튼 YS의 조깅 제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은 실망했을지 몰라도 클린턴 전 장관은 좋아했을 것 같다.
한 가지 의문도 든다. 클린턴 전 장관이야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할 뻔 했고 공직 생활을 오래 했으니 그렇다 쳐도 왜 각국 영부인이 골프를 쳤다는 기록은 많지 않을까? 트럼프, 오바마, 클린턴, 부시 부자 등 미국의 전 대통령들은 모두 내로라하는 골프광이었다.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직 중 골프를 너무 많이 친다는 이유로 한 기자에게 면박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골프광 대통령들의 부인들이 남편만큼 골프를 즐겼다는 보도는 보지 못했다.
한국도 마찬가지. ’홀인원‘을 해 해당 골프장에 식수를 했다는 이순자 여사를 제외하면 영부인의 골프에 관한 보도를 접하기 어렵다. 영부인은 골프를 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