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B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이제는 이마저 길다. 그저 ‘삼소’라는 두 글자면 충분할 만큼 한국인 입맛을 사로잡은 조합이다. 그런데 어르신 중에는 어릴 때 삼겹살을 먹은 기억을 떠올리는 분들이 별로 없다. 젊은 세대는 의아하겠지만 ‘삼겹살’은 1994년 전까지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찾을 수 없던 낱말이었다.
그렇다고 그 전까지 이런 낱말을 아예 쓰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한국 언론에 삼겹살 관련 표현이 처음 등장한 건 1934년 오늘(11월 3일)자 동아일보였다. 당시 ‘육류의 조코(좋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는 법’이라는 기사에는 “도야지(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이 부위가 많지 아니하나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이 제일 맛이 있고 그 다음으로는 목덜미 살이 맛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세겹살’이 바로 요즘 말하는 삼겹살이다.
1934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 석간 4면(당시 동아일보는 조·석간 동시 발행)
잠깐만 생각해 보면 삼겹살보다는 세겹살이 어법에 맞는 표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삼겹살은 살코기와 지방이 세 번 겹쳐 있다는 뜻. 겹겹이 쌓인 건 한 겹, 두 겹, 세 겹이라고 세니까 삼겹살보다는 세겹살이 더 정확한 표현처럼 보이는 것.
하지만 이 낱말이 동아일보 지면에서 자취를 감춘 지도 벌써 40년이 넘었다. 동아일보 지면에 세겹살이 마지막으로 등장한 건 1974년 12월 5일자였다. 당시 동아일보는 5면에 나간 ‘값싸고 영양가 높은 돼지고기 조리법’ 기사를 통해 ‘돼지고기 세겹살 조림’을 소개했다.
1974년 12월 5일자 동아일보 5면
여기서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삼겹살을 지금처럼 구워 먹은 게 아니라 조려 먹었다는 것. 당시에는 ‘삽겹살은 당연히 구워 먹는 것’이라는 생각이 희박했다는 증거다. 이 기사에는 또 “특히 싫어하는 사람이 많은 돼지고기”라는 구절도 등장한다. 적어도 1974년까지는 삼겹살은 물론 돼지고기도 그렇게 인기 있는 먹거리는 아니었다고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답은 ‘정확히는 모른다’에 가깝다.
2009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박사학위 논문 ‘근대 이후 100년간 한국 육류구이 문화의 변화’(이규진)에 따르면 한우·돼지갈비, 주물럭 같은 고기구이는 ‘원조’를 추적할 수 있다. 하지만 삼겹살은 “1970년대 후반쯤 ‘우후죽숙처럼’ 생겨났지만 처음부터 정착하지는 못했고 여름철에는 비수기가 되는 등 적응기를 거친 것으로 보인다”고 짐작할 뿐이다.
일부 음식평론가는 1970년대 일본에서 돈가스를 만들 때 쓸 등심과 안심만 수입해 가는 바람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은 먹지 않는) 삼겹살을 먹게 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 돈육(돼지고기) 수출 현황을 보면 이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는 게 축산경영학 전문가들 의견이다.
대한양돈협회 관계자는 “1975년 돼지 수출 물량이 8500t 정도였다. 당시 돼지 한 마리에서 생산할 수 있는 등심과 안심은 5㎏ 안팎이었다. 170만 마리를 잡아야 8500t다. 당시 한 해에 보통 돼지를 200만 마리 정도 잡았다. 그러면 85%를 수출했다는 거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1983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8면
사실 음식 유래 같은 것 좀 모르면 또 어떤가. 안도현 시인이 ‘퇴근길’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 “삽겹살에 소주 한잔 없다면/아, 이것마저 없다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 퇴근길에 삽겹살에 소주 한 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