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장-5대기업 경영인 간담회]
2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5대 그룹 간담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가운데)이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여전히 의구심이 든다”며 대기업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 방침을 밝혔다. 왼쪽부터 하현회 ㈜LG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이상훈 삼성전자 사장, 김 위원장,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황각규 롯데지주 사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공정위는 대기업 총수가 공익재단에 재산을 출연한 뒤 이를 통해 편법으로 지배력을 강화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면서 내심 불만이 크다. 오너 일가를 정조준한 방침에 “공익재단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 대기업 개혁 칼 빼든 정부
이달부터 시작되는 공익재단 전수조사는 공정위 기업집단국이 맡는다. 기업집단국은 문재인 정부가 새로 만든 조직으로 대기업 조사를 전담한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당시 “대기업이 계열 공익법인을 이용해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실태를 차단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과는 내년 상반기에 나온다.
대기업 공익재단은 공익을 수행한다는 명목으로 상속·증여세 면제 등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이를 악용해 공익재단을 오너 일가 지배력 확보에 이용한다고 비판한다. 계열사 주식을 공익재단에 출자한 뒤 세금을 감면받고, 이 공익재단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그룹 전체 경영권을 승계한다는 지적이다.
공익재단이 취지와 다르게 오너 일가 지배구조 강화에 이용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질 것으로 공정위는 보고 있다. 자연스럽게 관련법 개정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32개 그룹 중 20개 그룹이 42개 공익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 공익재단은 총 84개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주회사의 수익 구조에 대한 실태 조사도 할 계획이다. 자회사가 지주회사에 지불하는 브랜드 수수료, 건물 임대료 수입 등이 총수 일가의 재산 증식에 이용될 가능성에 대해 짚어 보겠다는 것이다. 각 그룹의 지주회사가 매기는 브랜드 수수료율이 제각각이어서 어느 정도가 적정한 시장 가격인지 확인해 본다는 차원이다.
○ 공정위 방침에 긴장한 대기업
이날 간담회장에 들어선 김 위원장은 당초 10분만 하려던 모두발언을 25분간 이어가며 작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6월 1차 간담회 이후 재계의 자발적 변화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2차 간담회를 먼저 재계에 요청했다. 간담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웃음 띤 얼굴로 덕담을 주고받던 재계 참석자들은 간담회 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김 위원장이 말을 하는 동안 참석자들은 바닥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하늘을 올려다보며 곤혹스러움을 감추려 애썼다. 간간이 한숨을 쉬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긍정적인 출발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며 포문을 열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선거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대기업 집단의 지배구조 개선, 총수 일가의 편법적 지배 승계 방지 등을 약속했는데 더욱 혹독한 변화를 해 달라”고 채근했다. 간담회 후 김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딱딱한 규제를 통한, 마치 칼춤 추는 듯 접근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보면 기업들이 알아서 미리 문제점을 살펴보라는 경고다.
기업들은 공정위 방침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공익재단을 소유한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공익재단은 재무 상황, 활동 내용이 고스란히 온라인에 공시되고 견제와 조사도 이미 많이 받고 있다. 자칫 공익 활동이 위축될 수도 있다”며 긴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