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1998년 퇴출 은행원들 그 후
1997년 외환위기 광풍이 몰아친 지 20년이 지났다. 당시 해고된 직장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서울 청계천로 보도를 걷고 있는 회사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동아일보DB
김상훈(가명·52) 씨는 1998년 6월 29일 퇴출된 동화은행의 직원이었다. 상고 졸업 후 취직한 지 14년 만이었다. 재취업을 알아봤지만 허사였다. 퇴출 은행 직원에게 문을 열어주는 회사는 없었다. 포장마차, 택시 운전, 막노동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한숨 쉴 여유조차 없었다. 두 딸과 홀어머니를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1년 8월 23일, 정부는 예정보다 3년 앞서 구제금융 195억 달러를 모두 갚고 국제통화기금(IMF)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김 씨의 생활은 거의 그대로였다. 2008년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다시 양복을 입고 일하게 된 게 그나마 위안거리다.
“한국 경제는 지금 뜨거운 냄비 안에 들어 있는 개구리다. 5년 이내에 냄비에서 뛰쳐나가지 못하면 그대로 죽을 것이다.”
3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가 국내 경제전문가 48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경제가 ‘냄비 속 개구리’인가”라는 질문에 88.1%가 ‘그렇다’고 답했다. 대학교수, 연구원, 대기업 간부 등인 이들은 한국이 ‘냄비 탈출’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을 최장 5년으로 봤다. 경제 구조개혁에 남은 시간이 ‘1∼5년’이라는 응답이 90.4%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 △역동성 없는 산업구조의 경직성을 꼽았다. 곽노선 서강대 교수(경제학)는 “세계적으로 인구구조와 산업구조가 바뀌는 지금이 한국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교차점”이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동화은행 퇴직자 5명을 만나 그들의 고단했던 20년간 삶의 여정을 되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