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서른다섯에 회사를 나왔더니 내가 가진 자격증이란 운전면허증밖에 없더군요.”
동화은행 퇴직자 최기영(가명·54) 씨는 1998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너무 답답했다”고 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실업은 예고 없이 닥친다.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저성장과 무한 경쟁, 상시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당시 증자 계획안에 따르면 동화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부실 은행의 판단 기준인 8%를 넘길 수 있었다. 그래서 은행 직원들은 퇴출 발표 직전인 6월 27일까지 정상 근무를 했다. 하지만 정부는 증자 계획의 현실성이 불충분하다고 퇴출시켰다. 실직을 예상치 못한 직원들은 몇 개월 치 월급에 해당하는 퇴직금만 받고 나왔다.
하지만 1998년 9월 30일 기준으로 신한은행은 동화은행의 4급 이하 퇴직자 1532명 중 357명(23.3%)만 채용했다. 당시 동화은행을 포함해 퇴출 은행 5곳의 직원 8950명 중 942명만이 인수은행에 재고용됐다. 전국은행연합회에 전직금융인 취업센터가 마련되긴 했지만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당시 전국금융노동조합연맹 시중은행협의회 의장으로 노사정위원회 협상 멤버였던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에 급급해 퇴출자들이 사회에 정착하도록 노력한다고 말만 할 뿐 이행은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퇴직자 다수는 재기에 실패했다. 2004년 동아일보가 동화은행 퇴직자 229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65.5%가 소득이 하락했고, 19.6%는 빈곤층(연소득 1380만 원 이하)으로 전락했다. 박선철 동화은행 노조위원장은 “연락이 닿지 않는 분들은 대부분 더욱 괴롭게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에서 실업대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정부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실업급여를 확대하고 실직자가 재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업대책이 제대로 마련돼야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지고 급변하는 산업환경에도 적극 대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스트리아식 모델도 제안됐다. 이용득 의원은 “(비정규직처럼) 노조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을 대변하는 ‘노동회의소’를 설립하고 실업수당 지급과 성장 산업으로 전직하기 위한 직업훈련 등 산업, 노동, 복지 정책을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