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차장
지난주 취임한 김용덕 손해보험협회장(67)은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금융당국 수장으로 문재인 캠프 정책자문단에서 활동했다. 국제금융 전문가라 보험 경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28년 만의 장관급 회장에 거는 보험업계의 기대가 크다. 그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고려대 선배로 행시 기수도 10년이나 높다.
한동안 기억에서 잊혀졌던 역전(歷戰)의 관료들이 속속 현업으로 돌아올 태세다. 고령에도 일을 하려는 본인의 희망, 기왕이면 ‘센 분’을 모셔 와서 업계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서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도 ‘올드보이’의 귀환과 맥을 같이한다. 복귀 소식이 들리는 사람들이 죄다 진보 정부에서 감투를 썼던 인물이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느 자리에 몇 살까지만 취업할 수 있다는 법 조항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오랫동안 지켜져 온 나름의 관행과 이유가 있다. 중앙부처 관료들은 50대 초·중반 공직에서 은퇴하면 60세 안팎까지 기관장이나 민간기업 임원을 한 차례 지내고 집에 가는 게 ‘기본 루트’다. 퇴직 관료의 재취업에도 묵시적 정년이 있는 것은 이들이 받는 고연봉이 관료 생활을 밑천에 깔지 않고서는 애초에 불가능한 특혜이기 때문이다. 민간기업 오너도 대략 70세 전에는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다. 금융지주 회장 역시 67∼70세의 나이 제한 규정이 있다.
유럽은 30대 총리와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라는 이유로 이들 ‘7080’의 약진을 무조건 노욕(老慾)이라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정권과 코드를 맞추기 위해 이런 원로들을 다시 소환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가 심각하다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또 산하기관·협회를 두세 번씩 돌면서 70이 넘도록 현역을 유지하면 후배 장관에게도 본의 아니게 누(累)가 될 수 있다. 영화(榮華)를 누릴 만큼 누리고 누구보다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분들이 월급봉투 한 번 받아보는 게 소원인 구직 청년들, 팔팔한 나이에 조직에서 밀려나 치킨집을 차려야 하는 은퇴자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