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예루살렘 서쪽 성벽인 ‘통곡의 벽’은 유대교와 이슬람교가 모두 신성시하는 성지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들 간의 갈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동아일보DB
이세형 국제부 기자
현대적인 느낌과 고전미가 잘 어우러진 도시 풍경과 미국 실리콘밸리 같은 첨단기술 허브를 지향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현지 스타트업과 정부 부처 관계자들의 대화 속에서 잠시 잊고 있었던 이스라엘의 엄중한 안보 현실이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최근에는 비교적 조용했지만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에서도 대표적인 분쟁 국가인 이스라엘이 극도의 위험 지역이 되는 건 언제든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따라 유독 많은 군인과 경찰이 거리에 보이는 것 같았다.
이처럼 공습경보가 울렸다는 사실만으로 긴장하게 된 외국인(기자)과 달리 현지인들은 “과거보다 평화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분위기가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아워크라우드’를 운영하는 존 메드베드 대표는 이스라엘 경제 현황을 설명하던 중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비중 있게 설명했다. “아부다비 유도 대회에서 벌어진 일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이스라엘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던 큰 리스크 중 하나가 축소되고 있고, 미래가 그만큼 밝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기업이 개발한 서비스를 별다른 제한 없이 사용하는 아랍 국가도 많다. 전 세계 주요 도시의 대중교통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앱) 업체 ‘무빗’은 사우디, UAE, 바레인 같은 아랍 국가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한다. 무빗 관계자는 “우리 서비스를 막겠다는 반응을 보인 아랍 국가는 아직 없다. 북한 빼고는 사실상 어느 나라에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웃었다.
이스라엘이 비밀리에 오랜 앙숙 사우디와 고위 인사 회동 및 지역 정세 협의 등을 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가능하다” “필요한 조치다”라는 반응이 많았다. 또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가 추진 중인 △여성 운전 허용 △탈석유 전략 △국토개발 프로젝트 등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 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는 배경에는 자체적인 긴장 완화 필요성 못지않게 이란의 부상이란 변수가 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모두 적으로 여기는 이란이 ‘핵 합의’를 바탕으로 영향력이 확대되자 대(對)이란 견제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란은 중동국가 중 인구 규모, 석유와 가스 매장량, 과학기술과 교육 수준 등 종합적인 역량을 볼 때 가장 돋보이는 나라다. 어떤 형태로든 공동의 대응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사이에 형성돼 있다는 분석도 많다.
― 텔아비브·예루살렘에서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