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가 들어있지 않다는 안내문이 붙은 샌드위치. 인터넷 화면 캡처
장선희 문화부 기자
이런 ‘취향 저격’ 제품들의 등장에 소비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거꾸로 수박바는 선보인 지 불과 10일 만에 100만 개가 넘게 팔렸고, 얼려 먹는 야쿠르트는 판매 초반 하루 평균 20만 개가 나갔을 정도다. 그뿐일까. 최근 한 아이스크림 전문점을 찾았다가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반반씩 부은 커피를 발견하기도 했는데, ‘두 가지 취향을 한 번에 만족시키겠다’는 게 이 업체의 포부다. 화려하게 변신 중인 디저트를 보며 요즘처럼 사람들의 취향이 존중받는 때가 또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개인 취향을 존중받지 못해 서러운 이들도 있다. 10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페이스북 페이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는 오이를 못 먹는 사람들의 눈물 나는 경험담이 올라온다. “배달 온 자장면과 김밥에 오이가 들어가 점심을 굶은 적이 있다”거나 “오이 냄새를 맡으면 속이 울렁거려 오이냉국이 급식 메뉴인 날엔 조퇴를 했다” 등 오이에 대한 심각한 고충을 털어놓는 이들이 적잖다. 무엇보다 이 페이지의 ‘오이 기피자’들이 하나같이 공감하는 것은 “오이를 못 먹는다”고 밝혔을 때 으레 나오는 사람들의 ‘까칠한’ 반응이다. 이들 사이에서는 ‘오이꼰대’(오이를 못 먹는다고 하면 무조건 편식으로 치부하는 이들) ‘오이코패스’(오이를 싫어한다는 생각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라는 말까지 통용될 정도다.
비단 먹는 것뿐이겠는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미혼의 40대 스타일리스트는 ‘비혼’ 소신을 밝혔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진짜 안 해? 두고 보자”라거나 “너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냐?” 같은 반응이 나와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사실을 밝힌 뒤 주변의 걱정과 무수한 설득에 시달렸다는 친구 부부의 경험담, 번듯한 직장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겠다고 선언했다가 ‘못난 놈’ 소리를 들었다는 대학 후배까지, 삶의 취향을 존중받지 못해 속상하다던 내 주변 이들의 이야기가 하나둘씩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오이가 미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기 때문일까. 한 김밥 브랜드가 ‘오이 없는 김밥’을 내놨고, 편의점에서도 ‘오이가 들어 있다’는 알림 스티커가 붙은 샌드위치가 등장했다. 사실 ‘나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자’는 거창한 말은 필요 없다. 그저 내 주변 누군가의 사소한 취향을 인정해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좀 더 넉넉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장선희 문화부 기자 sun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