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 맞선 민주화투사 YS… 위기 닥치자 죽은 박정희 불러내 최초의 父女대통령 박근혜… 감옥서 100주기 맞을 줄이야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평가하듯 “박정희 체제도 功七過三”… 문 대통령이 인정할 수 없을까
김순덕 논설주간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독재자 박정희에게 맞섰던 YS다. 그 민주화 투사가, 그것도 유신 철권통치가 끝난 지 18년 만에 죽은 박정희를 무덤에서 불러낸 거다. 우리가 역사 앞에서 겸허해져야 할 이유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까지 받자 박근혜는 ‘어떻게 일군 나라인데 나 혼자 편하게 산다면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하게 뵐 수 있을까’ 싶어 한나라당에 입당했다고 자서전에 썼다.
그가 14일 박정희 탄생 100주기를 영어(囹圄)의 몸으로 맞는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당하지 않았다면 3월부터 중·고등학생들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명시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배우고 있을 것이고, 박 전 대통령은 성대한 100주기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을지 모른다.
박정희 신드롬은 역사건망증이라고 역사학자 강만길은 1999년 일찌감치 일갈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교수 시절 “무능한 민주세력이 박정희 부활의 정치적·지적 공간을 제공한다”고 했을 만큼 김대중(DJ), 노무현 정부가 박정희 신드롬을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2012년 박 대통령의 51.6% 득표율 당선에도 분명 박정희 신드롬이 작용했을 터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집권 청사진을 담은 ‘대한민국이 묻는다’ 출간 기념회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군부독재가 연장되는 바람에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구체제 적폐청산 의지를 천명했다. 기본권과 삼권분립을 유린한 개발독재나 국가정보원을 동원한 공작정치, 관료-재벌의 부정부패와 관치(官治)경제, 반공을 내세운 사상 통제 등은 진작 사라졌어야 마땅한 적폐였다.
그러나 ‘한국적 기억’ 속에 있는 박정희는 그게 다가 아니다. 신화라고 해도 좋다. 라스푸틴 같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건이 터졌을 때 박근혜가 이 다음 저승에서 어떻게 아버지를 볼지 나는 혼자 분노했다. 문 대통령은 “경제를 발전시킨 게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서라는데 원래 장면 정부 때부터 수립해둔 것이고 시행하기 직전에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말은 쉽다. 터키의 케말 파샤도, 이집트의 가말 나세르도 쿠데타에 성공했지만 근대화까지 성공한 건 수출입국으로 나아간 박정희뿐이었다.
애비가 종이었다고 애비를 부정할 순 없다. 경제 없이는 안보도 없다며 1965년 40%였던 극빈자를 1980년 10% 밑으로 끌어내렸고, 그 결과 자주국방을 주장한 대통령은 박정희와 노무현뿐임을 이른바 진보좌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방위는 아시아가 책임지라’는 1969년 닉슨 독트린 이후 베트남 파병국가인 한국과 태국, 필리핀에 독재체제가 들어섰지만 오직 한국만 핵 포기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개발을 얻어내고, 결국 민주화도 이룩한 사실을 좌파가 외면한다면 가증스러운 위선이다.
그들 지적대로 박정희가 만주사관학교에서 보고 배운 것은 군국주의, 전체주의였다. 유신시대 퍼스트레이디 박근혜도 ‘한국적 민주주의’밖에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 86그룹은 민주화투쟁을 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당장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적폐청산이고, 통쾌한 복수이자 뼈아픈 교훈을 안기는 거다. 그들이야말로 박정희한테 세계적 흐름을 똑바로 보고 실용적으로 국익을 챙기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김순덕 논설주간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