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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참사 한달만에… 美 교회서 또 무차별 총격

입력 | 2017-11-07 03:00:00

텍사스 시골서 26명 사망 26명 부상




《마을 주민이 360명에 불과한 미국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일요일이 비극의 날이 됐다. 5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주 서덜랜드스프링스의 교회에서 불명예 제대한 퇴역 군인이 총기를 난사해 26명이 숨졌다. 지난달 1일 라스베이거스 콘서트장 사건으로 58명이 사망한 데 이어 불과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총기사건으로 미국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끔찍한 악마의 행동(act of evil)”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5일 한 남성의 무차별 총격으로 2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미국 텍사스주 제1침례교회.

예배가 시작된 일요일 오전 11시 20분. 경건한 분위기를 깨고 괴한이 예배당 안으로 들이닥쳤다. 검은 군복에 방탄조끼 차림의 20대 청년은 교회 앞에 차를 주차한 뒤 AR-15 소총의 한 종류인 AR-556을 난사하며 뛰어들었다. 탄창을 여러 번 갈아 끼우며 공격하던 괴한은 현장에서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타고 달아났다.

이 사건으로 23명이 교회 안에서 목숨을 잃었다. 2명은 교회 밖에서, 1명은 병원에서 숨졌다. 26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이날 프랭크 포머로이 목사의 14세 딸도 현장에서 사망했다. 희생자 연령대가 5세부터 72세까지 광범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CNN과 뉴욕타임스(NYT)는 5일 벌어진 텍사스주 서덜랜드스프링스 제1침례교회의 참극을 이렇게 묘사했다. 대부분 주민이 농사를 짓거나 목장을 하는 소박한 마을마저 미국에서는 무차별 총격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직 구체적인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미국 사회는 연이은 총기 난사 사건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NYT는 이번 사건으로 주민 7%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2000년 인구통계조사에 따르면 서덜랜드스프링스의 주민은 360명, 로이터통신은 900명이라고 보도했다.

용의자는 이곳에서 북쪽으로 약 50km 떨어진 뉴브라운펄스에 사는 데빈 패트릭 켈리(26)였다. 현지 경찰의 조사에 따르면 뉴브라운펄스에 거주하던 용의자는 2014년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했다. 앤 스테파넥 미 공군 홍보책임자는 “뉴멕시코 공군기지에서 근무하던 켈리가 부인과 아이들을 공격한 혐의로 2012년 군법회의에 회부돼 12개월 형을 받고 2014년 공군에서 불명예 전역했다”고 밝혔다. 차를 타고 인근 과달루페카운티로까지 달아난 켈리는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도착하기 전 조니 랑겐도프 씨 등 주민 2명이 총을 쏘며 시속 150km로 추격전을 벌여 더 큰 피해를 막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이날 부모를 모두 잃은 스콧 홀콤비 씨(30)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마음이 따뜻했고 설교를 좋아하는 좋은 분이셨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는 주민들의 모습이 유튜브에 공개돼 미국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서덜랜드스프링스를 관할하는 윌슨카운티의 조 태킷 보안관은 “이 작은 마을에선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왔던 일이 오늘 일어났다”고 안타까워했다.

‘제1침례교회’는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교회다. 군인 출신 백인이 일요일 예배 시간에 교회를 공격해 충격을 더했다. 경찰은 현재 이슬람국가(IS) 등 테러 조직과의 연계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켈리가 왜 집에서 50km나 떨어진 이 교회까지 와서 총기를 난사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사건으로 총기 규제 여론이 다시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 사용된 루거사의 ‘AR-15’류 소총은 총기 난사 사건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무기다. 미군이 사용하는 자동소총과 유사한 모델로, 민간인은 반자동 모델만 합법적으로 보유할 수 있다. 정당 500∼900달러에 팔린다. 1994년 시행된 연방 공격무기 금지법에 의해 규제를 받다가 2004년 이 규제가 폐지되면서 AR-15 모델의 판매가 급증했다. 켈리의 차 안에서는 또 다른 총기도 발견됐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에서 3만8000명이 총기 사건으로 사망했다. 총기 사망자는 지난해 인구 10만 명당 12명으로 2년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총기 자살이 60%로 가장 많았고, 총기 살인(36%), 의도치 않은 총기 사고나 경찰 등의 총기로 인한 사망(1.3%)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아시아를 순방 중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방문국인 일본 도쿄에서 6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 도중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힘을 합칠 때 강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원인은 ‘정신 이상’”이라며 총기 허가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목요일까지 백악관과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할 것을 지시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