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보수, 진보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지나친 팬심은 민주주의를 해치는 요소다. 동아일보DB
박상훈 정치학자 정치발전소 학교장
우선 그들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 이끌어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보통의 지지자들과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다. 오로지 문재인 대통령만 의견의 자유를 향유하길 바라고 나머지 그와 갈등하는 의견은 없어도 좋다고 본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는 일당제주의자들이다. 처음에 그들이 박근혜 정부의 통치를 비판할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다른 후보들을 심하게 공격할 때도 선거의 한 과정이려니 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엔 달랐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를 비판했었다는 이유로 진보언론에 굴종을 강요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를 이유로 국회 해산을 주장하고, 대통령의 요청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민노총을 공격하고, 촛불집회 1주년 행사의 행진 방향을 바꾸려 한 것도 지나쳤다.
민주주의란 정당하게 선출된 정부에 일정 기간 주권을 위임하는 대신 자유롭게 비판하고 반대할 권리를 시민이 향유하는 체제를 뜻한다. 한 사람만이 자유를 누리는 체제는 전제정이라 한다. 아마 그들은 문 대통령은 정의롭기에 예외라 여기거나, 설령 전제정이라 해도 ‘선한 전제정’이라면 적폐 청산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박근혜식 통치란 무엇인가. 청와대를 권력의 중심에 놓고 행정 명령으로 일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국회와 야당을 무시한 것은 물론이고 집권당조차 수동적 하위 파트너로 삼는 것이 그 짝이며, 그로 인한 정당성의 부재를 ‘국민 명령’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국민이 주체가 되는 정치 개혁을 하겠다거나, 노동 개혁을 위해 국민이 나서야 한다는 것은 박 전 대통령이 즐겨 쓴 말이었다. 검찰을 앞세워 ‘좌익정권 적폐 청산’을 추진하고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블랙리스트로 만들어 배제한 것도 목적의 선함으로 용인되었다. 이 모든 일을 위해 여론 지지를 높이는 것이 우선시되었고 박사모의 역할도 필요했다. 국민이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달랐을까? 문 대통령이 청와대 정부를 복원한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실장과 수석으로 대표되는 비서실 조직은 내각을 통할하고 집권당을 압도하는 힘을 갖는 반면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 권력기구다. 애초부터 그럴 요량이었다면 미국처럼 차라리 그들을 장관으로 세우든지, 아니면 현행 정부조직법에 맞게 국무회의가 중심을 잡아야 했다.
굳이 수석보좌관 조직이 필요했다면 집권당의 정책 라인을 들여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누가 그 많은 부적격 인사를 추천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무책임한 인사 정책은 없었을 것이다. 대선 공약과는 정반대로 사드 추가 배치까지 하고, 포용정책이나 화해협력정책을 폐기한 대신 트럼프와 아베의 손을 잡고 ‘북한 극한 압박’을 주장하는, 이해할 수 없는 공약 파기는 제어되거나 최소한 왜 그래야 했는지 설명은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입법부도 아닌데 직접민주주의라며 입법청원을 받고 사법부도 아닌데 적폐 청산을 앞세워 도덕의 심판장을 주도하는 일도 이해할 수 없다. ‘부역자 척결’이라는, 말만 들어도 끔찍한 ‘유사 반공주의’를 부추길 줄은 정말 몰랐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의존하는 통치를 할수록, 여야와 대면해 정치를 하는 일을 회피할수록, 목소리 큰 지지자를 불러들일수록 사회는 양극화된다. 여론 지지 하나에 의존하는 정치는 위험하다. 지지율이 꺾이는 순간 변호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이런저런 이견이 공존하는 다원주의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바, 지금의 다당제를 잘 이끌어 성과를 내는 일을 무시하고 목소리 큰 지지자만 우대되는 정치를 한다면 적대와 분열을 최대화하는 ‘양극화된 양당제’로 돌아가게 된다.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면 그건 피해야 할 일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정치를 양분하는 세상은 생각만 해도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