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서초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aT센터 앞에서 열린 김장 행사에 참여한 충북 괴산군 새마을회원들. 이들은 7월에 수해를 당했을 때 서울시에서 도움을 받은 데 대한 보답 차원에서 김치(배추 6t 분량)를 담가 서울 지역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괴산군 제공
‘김장’은 월동 준비 필수 코스 가운데 하나였다. 2013년 유네스코(UNESCO)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김치를 담그고, 그렇게 담은 김치를 나눠 먹는 김장 문화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장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김치 제조업체 J에서 주부 1175명을 설문 조사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김장 계획이 있는 주부는 45%에 불과했다. 55%는 김장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는 것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최근 8년 동안 김장철마다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김포족(김장포기족) 비율이 50%를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또 김장을 하기로 한 주부 중에서도 60%는 배추 20포기 이하로 김장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96년 전에는 ‘스케일’ 자체가 달랐다.
1921년 11월 8일자 동아일보는 당시 경성(서울) 지역 ‘김장 물가’를 전했는데 배추 가격은 “100통에 5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현미 국립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 학예연구관은 “배추 100통 정도를 김장량의 기본 단위로 봤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5원은 금 3.65g을 살 수 있던 돈이었다. 이를 토대로 현재 물가로 환산하면 약 16만6900원 정도다. ‘서울시 물가정보’에 따르면 7일 현재 배추 한 포기는 2380원. 100포기면 23만8000원으로 올해가 14.3% 정도 더 비싸다. 단, 현재 우리가 먹는 배추는 ‘씨 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1954년 개량에 성공한 품종이기에 당시 가격과 일대일로 비교하기는 무리다.
김장 포기 숫자만 달라진 게 아니다. 1977년 11월 29일자 동아일보에는 ‘아파아트의 김장 ─ 뜰 있는 집은 얼마나 좋을까…’라는 독자 칼럼이 실렸다. 아파트 실내가 비좁아 김장하기가 어렵고 김칫독 묻을 곳을 찾기도 마땅찮다는 내용이었다.
이 칼럼을 보내온 신현수 씨는 “남들은 다 아파트가 편리하다면서 옮겨가고 아파트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시종 뜰이 있는 집을 지켜 오신 부모님께 새삼 고마움을 느끼는 별난 마음이 되는 것도 아파트와 김장이 빚는 부조화 탓인가”라고 적었다.
이제는 전체 가구 중 48.1%(2015년 기준)가 아파트에 살지만 이런 부조화를 고민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1993년 김치냉장고가 세상에 나온 효과가 컸다.
1993년 1월 31일자 동아일보는 “김치냉장고는 김치를 오래 저장하고 싶다거나 김치는 즐겨 먹지만 김치 냄새가 냉장고에 배는 것을 싫어하는 소비자의 공통된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아파트, 연립주택 등으로 주거 형태가 바뀌면서 냉장고가 사계절 상품으로 자리를 굳혀감에 따라 냉장고 판촉전은 한겨울에도 뜨겁기만 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김치냉장고의 역기능(?)도 있다. 김치냉장고 보급이 ‘김포족’ 숫자도 늘린 것. 배추 재배 기술과 냉장 보관 기술이 더 발전하면 언젠가는 아예 김장하는 풍속 자체가 사라지지 않을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정 연구관은 “이 질문 대한 대답은 ‘아니다’라고 확신한다”면서 “갈수록 소외 계층을 위한 ‘사랑의 김장 나눔’ 행사가 많아지고 있다. 김장 풍속에 담긴 따스한 ‘정’을 나누는 문화가 가족에서 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은 그런 사람들”이라고 강조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