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감춘 무대’ 붐
일본 밴드 ‘세카이노 오와리’
어느새 핼러윈은 서양의 명절에서 한국의 명절로 흡수된 듯했다. 언젠가부터 유치원의 대표적 연례행사가 됐고, 이태원 등지에는 이맘때면 가면무도회의 물결이 넘실댄다. 스파이더맨, 배트맨 같은 슈퍼히어로부터 조커나 도깨비 같은 다소 무서운 캐릭터까지 다양한 가면과 복장으로 도시를 배회한다.
○ 쓰면 되고 벗으면 안 된다… 가면의 효용
7은 지난달 27일 밤 서울 광진구에서 가면 콘서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향했다. KT에서 연 ‘청춘해’ 콘서트. 입장 전에 1000명가량의 관객들에게 가면과 핼러윈 기념품을 나눠줬다. 청춘들의 고민을 나누고 초대 가수의 노래와 사연도 듣는 공연. 참가자들은 용기를 내서 무대에 올라 취업,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일부는 가면을 쓴 채 자신의 연애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청춘해’ 콘서트 관계자는 “요즘엔 소셜미디어 덕에 교류의 폭이 넓지만 정작 남의 눈치 안 보고 자기 마음 툭 터놓을 공간은 역설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세태에서 가면이 주는 효용이 발생한다”고 해석했다.
캐나다 DJ ‘데드마우스’
○ 키스부터 DJ 마시멜로까지… 가면들의 세상
맨얼굴이야말로 복제할 수 없는 개성이다. 그러나 얼굴 개성으로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역사 속에 늘 있었다. 때로 그들이 대중을 이끌었다. 1970년대 데뷔한 미국 록 밴드 키스. 만화에서 튀어나온 도깨비처럼 괴기스러운 얼굴 분장 뒤에 진짜 얼굴을 숨겼고, 악몽 같은 퍼포먼스로 스타덤에 올랐다. 1960년대 ‘쇼크 록의 대부’ 앨리스 쿠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모습이었다. 1990년대엔 콘택트렌즈와 치과용 의료기구로 끔찍한 분장을 한 메릴린 맨슨이 계보를 이었다.
21세기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계에 다시 한번 가면의 전성기가 왔다. 프랑스 듀오 다프트 펑크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1999년 9월 9일 오전 9시 9분 컴퓨터 버그로 스튜디오 기자재가 폭발하는 사고를 당한 뒤 사이보그가 됐다고 주장하며 로봇 탈을 뒤집어썼다. 그래미 시상식을 비롯한 모든 공공장소에서 불편한 로봇 탈을 고집한 덕에 이들은 음악 외에 관련 캐릭터 상품 판매로도 매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죽은 쥐 가면을 쓴 ‘데드마우스’, 얼굴 있을 자리에 마시멜로를 뒤집어쓴 DJ 마시멜로도 대형 전자음악 축제 무대에서 군중을 열광시킨다.
7이 만난 전문가들은 가면 붐에 대해 “인간 사회의 현실을 벗어나 다른 세계로 가고 싶은 욕망, 일탈적 콘텐츠에서 죄의식을 희석시키려는 열망이 함께 작용했다. 따라서 가면 콘텐츠는 정보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들 내다봤다. 7 역시 이참에 특제 가면을 하나 제작하려 서울 을지로로 향하는데….(다음 회에 계속)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