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움직여 북핵 해결하려면 속 터놓는 전략적 교감 필요한데 中의 北 거래기업 제재할 시점에 균형외교 거론해 의구심만 키워 트럼프 “한국 스키핑 없다”지만 ‘3不’로 군사옵션 신뢰성 허물면 코리아 패싱 스스로 부를 뿐이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우리의 발언권은 북한 핵문제 해결에 독자 기여하는 지분과 아울러 해결 수단을 가진 나라들의 역량과 의지를 결집하는 외교력에 비례한다. 독자적 역량은 제한돼 있더라도 막강한 수단을 보유한 미국의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발언권을 우리의 체급 이상으로 키울 수도 있다. 미국을 움직일 힘은 말로 하는 공조보다 서로 속마음을 터놓고 전략적으로 교감할 능력에 달려 있다.
미국 본토까지 핵탄두를 날려 보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을 눈앞에 둔 북한이 핵무기를 흥정 대상으로 삼을 유일한 상황은 무엇일까. 체제의 안전을 지켜 줄 구원자라고 철통같이 믿었던 핵무기가 오히려 멸망을 재촉할 저주가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다. 김정은이 이런 결론을 내릴 시점은 제재가 전면 경제봉쇄 수준으로 확대돼 북한 체제가 더 이상 버틸 여력이 소진되고 계속 핵 포기를 거부하면 미국이 최후 수단으로 틀림없이 군사적 해결에 나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될 때밖에 없다.
군사적 옵션의 가치는 북한에 평화적 해결의 대안을 보여줌으로써 협상 이외의 선택을 박탈하는 데 있다. 군사적 해법은 북한에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다. 선제공격을 당했을 때 김정은의 선택은 섣불리 반격에 나섰다가 수일 내에 종말을 맞는 것과 수모를 참고 후일을 기약하며 살아남는 것밖에 없다. 김정은이 아무리 핵 보복을 호언장담해도 자연수명이 다할 때까지 절대 권력을 누리며 살 길을 굳이 마다하고 실제로 집단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순간적 정신착란으로 멸망을 선택할 가능성이 아무리 낮더라도 이에 완벽히 대비하지 않으면 군사적 옵션은 신뢰성을 상실하고 오판의 여지를 제공한다. 신뢰성 없는 군사적 옵션은 허풍에 불과하다. 북한의 자살공격으로부터 수도권을 지켜낼 다층적 미사일방어망과 장사정 포탄을 막아낼 방책을 완비하기 전에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김정은에게 먹혀 들어갈 수 없는 이유다.
10월 31일 사드 관련 한중 간 합의 과정에서 나온 정부의 ‘3불(不) 입장’은 우리와 안보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나라와 대한민국의 안보주권을 흥정의 대상으로 삼은 치욕적 자해(自害)행위로 끝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군사적 옵션의 신뢰성을 박탈함으로써 평화적 비핵화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소지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중국의 심통을 풀어주기 위해 한국이 수천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킬 권리를 ‘조공’으로 바칠 수도 있는 나라로 비친다면 미국이 속마음을 보여주며 상의하고 공조할 이유가 있을까? 미국이 아무리 코리아 패싱이 없다고 해도 우리가 자초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사)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