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로 옮겨간 환영-반대 집회

8일 오전 11시경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정문 앞.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기를 기다리던 ‘반(反)트럼프’ 시위대에서 짜증 섞인 고성이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국회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다.
이때 트럼프 대통령 일행은 이미 국회 경내에 들어섰다. 시위대가 몰려 있는 정문을 피해 서강대교 쪽으로 나 있는 동문(국회6문)을 이용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의 경호팀이 국회 주변 상황을 고려해 도착 직전 이동경로를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일행이 지나가길 기다리던 시위대는 “또 눈 뜨고 당했다”고 말했다. 전날 국빈 만찬에서 돌아가던 트럼프 대통령이 집회를 피해 광화문광장 옆 도로를 ‘역주행’한 상황과 비슷해서다. 한 참가자는 “어제 역주행한 것도 모자라 오늘은 쪽문으로 왔다”고 목청을 높였다.

찬성 측의 한 60대 참가자는 공동행동 측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실신해 119 구급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약 5분간의 충돌 후 경찰은 버스 17대를 투입해 차벽을 만든 뒤 양측을 분리했다. 이날 국회 앞에는 ‘공동행동’ 등 반대 측 시위대 6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재향군인회 등 찬성 측 집회 참가자는 이보다 10배 이상 많은 8000여 명(경찰 추산)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돌발 상황을 고려해 대체로 플랜B, 플랜C까지 세 가지 계획을 짜놓고 상황에 따라 적용한다. 경우에 따라 경호팀이 완전히 새로운 안을 내놓기도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 진입로 7개 가운데 어느 곳을 택할지는 경찰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만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마친 뒤에도 시위대를 피해 정문이 아닌 남문(국회3문)으로 빠져나갔다.
결과적으로 허탕을 친 공동행동 등 반대 측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에서 연설하는 동안 반대 집회를 이어갔다. 일부 참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형상화한 2m 높이의 대형 조형물에 붉은색 스프레이를 뿌린 뒤 경찰을 향해 던졌다. 트럼프 대통령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에 소금을 뿌린 뒤 찢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보수단체로부터 빼앗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태우며 ‘화형식’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김동혁 hack@donga.com·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