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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수의 라스트 씬] 영화 ‘접속’, 망설임과 믿음 사이…“만날 사람은 꼭 다시 만나잖아요”

입력 | 2017-11-10 06:57:00

영화 ‘접속’은 PC통신을 소재 삼아 서로 소통해가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렸다. 1990년대 말 디지털시대 신세대들의 문화를 바탕에 깔고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젊은 관객의 시선을 모았다. 사진제공|명필름·한국영상투자개발


■ 영화 ‘접속’

망설이는 남자, 기다리는 여자
선의의 거짓말에 흔들린 두 남녀
뒤늦게 그녀의 진심을 알아챈 남자
새로운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지

단순히 이야기의 결말만은 아닐 터이다. 수많은 상징과 은유가 포함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들여다보는 이들이 스스로 그 결론을 맺어주길 바라는 ‘열린 결말’로서 갈무리하기도 한다. 한 편의 영화가 관객에게 안겨주는 진한 여운이 발원하는 또 하나의 지점, 마지막 장면, 바로 ‘라스트 씬’(Last Scene)이다. 그래서 ‘라스트 씬’은 어쩌면 한 편의 영화가 드러내려는 모든 것이 담긴, 단 하나의 장면일지 모른다. 때로는 ‘에필로그’로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경우도 많아서 ‘라스트 씬’의 여운은 더욱 깊고 커지기도 한다. 표기법상 맞는 표현인 ‘라스트 신’이 아닌 ‘라스트 씬’이라 쓰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청춘들은 종로에서 만나고 헤어졌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를 빠져 나오면 보이던 종로2가 대로변의 6층 건물, 종로서적이 첫 손에 꼽히는 ‘만남의 장소’였다. 좁지만 길게 선 종로서적 건물의 로비는 늘 청춘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면 더욱 그랬다. 거리로까지 밀려나와 만남을 기다리던 이들 사이를 지나려면 진땀을 빼야 했다. 건너편 YMCA 건물 앞 역시 마찬가지였다. 종로서적과 YMCA 앞에서 서로를 만난 청춘들은 그 뒷골목 생맥주집이나 ‘학사주점’이라 불리는 술집에서 어설프게 취한 채 시대를 논하는 아픔을 게워내기도 했고, 우정이라는 치기 어린 명분으로 주먹다짐을 했다. 테이블마다 놓인 전화기를 통해 삐삐(무선호출기)로 호출한 이들의 응답을 들을 수 있는 카페에서는 미팅의 설레는 가슴을 만끽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 종로3가로 향하는 청춘들도 많았다. 종로3가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면으로 접어들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며 손님을 맞았던 두 극장이 있었다. 피카디리와 단성사였다. 지금은 각각 멀티플렉스와 주얼리 상가 건물로 변모했지만, 두 극장 역시 수많은 청춘들에게는 또 다른 ‘랜드마크’가 되어 주었다.

특히 피카디리 극장 앞 넓지도, 좁지도 않은 광장에 새겨진 스타들의 핸드프린트 위에서 청춘들은 영화 티켓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당시엔 흔치 않았던 노천카페 ‘CCI’(Coffee, Cake, Icecream)의 2층 통유리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극장 앞 광장에선 많은 젊음이 연인과 친구와 선후배를 만나 그 옆 골목 피맛골로 스며들기도 했다. 어둑어둑해지는 피맛골에서 배어나오는 빈대떡과 김치찌개, 도토리묵 등 갖은 안주는 퀴퀴한 막걸리 냄새와 어우러지며 서울 도심 뒷골목의 낭만을 제대로 피워내었다.

사랑은 바로 그곳,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영화 ‘접속’ 스틸컷. 사진제공|명필름·한국영상투자개발


●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요”

다만 새로운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건 또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이미 오래 전 자신을 떠나버린 사랑과 그에 연관된 이런 저런 과거가 남긴 생채기 탓인데, 두려움의 깊이는 그에 정비례하기 마련이다. 그 생채기와 두려움을 내어 보였을 때, 혹여 불현듯 새겨질 또 다른 생채기를 감당해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는 선뜻 다가서지 못한 채 두려움의 망설임으로 그저 오랜 시간 여자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자는 믿고 있다. “만나야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고. “어느 쪽이든 애타게 찾고 있다는 건 인연이라는 증거”라면서. 여자는 그렇게 인연을 믿었다. 밤이 깊어 노천카페의 파라솔이 걷혀지고 테이블과 의자가 치워지도록 극장 앞 광장에서 서성이는 것도, “어긋나는 만남도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자신 앞에 나타나주기를 기다리는 것도 그런 믿음에서다.

남자는 여전히 망설인다. 뒤늦게나마 여자의 믿음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극장 앞 광장에 선 여자 앞에 남자는 차마 다가설 수 없다. 여자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도망치듯 카페로 향하는 남자는 그 2층 통유리 너머로 광장의 여자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 앞에서 결국 여자의 믿음은 허망해지고 마는 것일까.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말을 믿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기까지 그래도 결코 놓아버릴 수 없었던 믿음이었는데 말이다.

남자와 여자가 그렇게 망설임과 믿음 사이에서 서성이기 훨씬 전이었다. 여자는 이미 떠나버린 사랑을 애써 찾아 나서려는 남자의 절박함을 잠시나마 위로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건 정말 선의였다. 하지만 남자의 절박함 앞에 거짓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 그래서 거짓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순간을 여자는 피할 수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사과했다. 사과하려 애썼다. 남자는 “사과하려고 애쓰지 말라”고 했다. 여자는 답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요.”

● “만나야 될 사람은 반드시 만난다”

여자는 불행이 비껴가는 것 같은 순간 들려온 음악을 남자와 함께 듣고 싶었다. 음악은 떠나간 사랑이 남자에게 뒤늦게 보내온 것이기도 했다. 이제 기어이 그 사랑을 놓아 버리면서 남자는 여자에게 음악을 건넸다. 여자는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 함께 음악을 들으며 위로해주고 싶었던 거다.

남자는 굳이 여자에게 위로받지 않아도 됐다. 그저 현실을 피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순진한 거짓말로 새삼 아프게 드러난 남자의 생채기를 외면할 수 없었다. 남자의 생채기는 곧 사랑을 얻지 못한 자신의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표정에 빠져들었지만, 바로 그 표정으로 그 남자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것을 알았을 때 안타까움, 그래도 여자는 그 남자를 짝사랑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사랑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는 남자에게 “당신을 본 적은 없지만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 것 같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자신과 같은 생채기를 안고 있는 남자가 “그걸 느끼지 못하고 그냥” 현실을 피하려 하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선의는 그렇게 진심이 된다. 남자는 여자의 진심을 알아차리고 힘없이 자신의 허망해진 믿음을 안고 광장을 떠나려는 여자를 쫓아 카페에서 뛰쳐나온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그래서 사랑은 진심이어야 한다. 그랬을 때 인연은 비로소 인연이 되는 것일 테다. 사랑의 아픔으로 남은 생채기도 그랬을 때 온전히 치유된다고, 이제 남자와 여자는 믿게 될 터이다. “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고도 믿게 되리라.

■ 영화 ‘접속’

1990년대 말 PC통신을 소재로 삼아 두 남녀가 사랑의 상처를 보듬어가는 이야기. 사랑의 생채기로 스스로를 가두고 살아가는 방송국 라디오PD 동현(한석규)과, 친구의 연인을 짝사랑하며 가슴 아파하는 홈쇼핑회사 쇼핑가이드 수현(전도연). 각기 사랑이 남긴 아픔을 안고 있는 두 사람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를 매개로 PC통신 대화방에서 만나 서로에게 다가간다. 이들이 서울 종로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 결국 인연임을 확인할 때 흐르는 사라 본의 ‘어 러버스 콘체르토(A Lover‘s Concerto)’ 역시 ‘페일 블루 아이즈’와 함께 영화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며 많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장윤현 감독의 1997년 상업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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