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한 말기암 환자 정현례 씨(오른쪽)가 직접 만든 팔찌를 딸과 함께 보이고 있다.
#장면2.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한 말기 암 환자 정현례 씨(45·여)는 스스로 연명의료를 포기하기로 했다. 약에 취해 숨을 거두느니 또렷한 정신으로 가족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DNR를 작성할 땐 가족, 주치의와 둘러앉아 어떤 연명의료를 포기할지 세세히 따졌다. 그의 곁을 지키는 딸 유준영 씨(23)는 “최근처럼 엄마와 깊은 대화를 오래 나눈 적이 없다”며 “마지막 사진을 예쁘게 남겨드리기 위해 화장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상 환자가 거부할 수 있는 시술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 4가지뿐이다. 하지만 실제 요양병원에선 이보다 광범위한 연명의료 중단 사례가 나온다. 기관지에 가래가 쌓여 호흡이 곤란해진 경우 식도 아래를 절개해 노폐물을 빨아들이면 살 수 있지만, 환자가 75세 이상 고령이라면 이런 시술을 선택하는 가족이 10명 중 2명꼴도 안 된다.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하실 환자이니 고통을 주지 말자’는 게 가족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런 연명의료 포기는 내년 2월부턴 연명의료결정법 위반에 해당해 최고 징역 3년에 처해질 수 있다. 반면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아도 가족의 고집이 앞서는 사례도 여전히 많다.
요양원도 사정이 낫지 않다. 요양원에는 의사가 상주하지 않고 촉탁의사가 월 2회 방문해 진료하기 때문에 사실상 당직 간호사가 임종기를 판단한다. 법률상으로는 주치의 1명과 전문의 1명이 함께 판정해야 한다. 서울의 한 요양원장은 “법대로 하려면 임종기 환자를 무조건 응급실로 보내야 하는데, 만약 이송 중 돌아가시면 그게 과연 존엄한 죽음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런 관행 탓에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평가한 한국의 ‘죽음의 질’은 40개국 중 32위에 머물렀다. 인구 10만 명당 호스피스 병상 수가 한국의 2배인 영국(1위)이나 내년부터 만성 통증환자가 영양급식까지 포기할 수 있도록 결정권을 강화하는 대만(14위)에 비하면 ‘존엄한 마지막’에 대한 인식이 걸음마 수준이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