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서 감귤농사 지으며 작곡작업… 손수 세운 농장 오두막 안에서 녹음 2년만에 신작 내고 순회공연 나서
자신의 제주 귤밭에 앉은 가수 루시드폴. “우리 부부의 배설물을 모아 거름으로 만드는 생태화장실에서 굼벵이가 나고 하늘소가 되는데, 거기서도 자연을 배운다”고 했다. 안테나뮤직 제공
2014년부터 제주에서 귤 농사를 짓는 그의 귤은 최근 무농약 인증을 받았다. 이번 귤이 당도가 장난이 아니라는 소문이 가요계에 퍼진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대학원 생명공학 박사. 그는 뭘 하든 열심히, 잘했다. 명망 있는 화학 교수가 될 수도 있었다. 서울의 한강을 굽어보는 멋진 녹음실에 앉아 곡을 쓰는 이가 될 수도….
거기서 만든 아홉 곡은 최근 2년 만의 신작,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 담아 내놨다. 자연의 사진, 삶에 관한 글이 담긴 동명의 에세이집과 함께 들어야 노랫말이 잘 흡수된다. ‘안녕,’(이하 곡 제목) 인사말 속에 무슨 벌레의 노래가 묻어 있는지, 어떤 새가 ‘그 가을 숲 속’에 묻혔는지, ‘폭풍의 언덕’ 속 오두막은 어떻게 감귤나무를 해치지 않았는지….
섬에 태풍이 불면 무서웠지만 “제아무리 큰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인공의 소리보다는 듣기 편했다”고 했다. “제 음악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의 삶은 본디 밤과 친했다. 박사 공부 때도, 음악 작업 때도 그 고요에 기댔었지만 농부가 되고 달라졌다. “농사를 위해 오전 4시에 일어나 오후 7시 반에 잠들곤 했어요.” 귤나무와 그를 둘러싼 치열하게 사는 모든 작은 것들에게서 배웠다. “작은 벌레든 큰 말이든 생명은 하나, 똑같더군요.”
그래서일까. 앨범 마지막 곡 ‘밤의 오스티나토’가 새로운 화학 실험식처럼 들리는 까닭이. 재료는 자연과 사람의 소리. 피아노의 오스티나토(일정한 음형의 반복)는 소수(素數)인 11박자로 공기를 간질이며 오두막 밖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 위를 사뿐히 걷는다.
4일 제주에서 시작한 루시드폴의 전국 순회공연은 10∼12일 경기 성남에 이어 연말까지 인천, 전북 전주, 부산, 대전, 서울, 대구로 이어진다. 02-2201-0222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