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0주년을 맞은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은 ‘10월혁명’으로 불린다. 제정 러시아가 채택한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10월 25일 공산정권이 수립됐기 때문이다. 현대 양력으로 따지면 혁명기념일은 11월 7일이다. 세계를 뒤흔들었던 ‘그날’을 기념하는 데 정작 혁명의 발상지는 냉담했다. 지난달 러시아 대통령궁 대변인은 외신기자들에게 “왜 우리가 이날을 축하해야 하는데?”라고 반문했다.
▷그 말 그대로였다. 국가 차원의 기념행사 없이 소수정당으로 몰락한 공산당을 중심으로 7일 가두행진과 집회가 열렸다. 17년째 장기집권을 통해 ‘21세기 차르(절대군주)’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는 구체제와의 결별을 뜻하는 ‘혁명’의 언급 자체가 껄끄러웠을 터다. 4선을 향한 내년 3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군중이 모이는 이벤트를 만들었다가 자칫 반체제 시위로 연결되면 큰일이므로.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자국에서 성공한 공산혁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4월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48%는 10월혁명을 긍정적으로, 31%는 부정적으로, 21%는 판단보류를 택했다. 이들이 양가적 감정을 느끼는 것은 혁명의 후유증을 너무도 오래, 고통스럽게 겪은 탓. 1917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소비에트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며 치켜든 아름다운 이상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고 자국은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참담한 파괴를 초래했다.
▷혁명 100주년에 거의 침묵을 지켜온 푸틴은 최근 이런 말을 했다. “혁명이 아닌 점진적 진보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 국가를 파괴하고 수백만 명의 운명을 무자비하게 짓밟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진정 불가능한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속셈이 무엇이든 그가 혁명의 독소를 지적한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빵과 토지의 평등을 앞세운 혁명 구호는 모두의 빈곤과 불행으로, 잔혹한 권력투쟁으로 귀결됐다. 막상 사회주의 종주국은 기억의 창고에 묻어두고자 하는 공포와 폭력의 정치. 그게 북녘 땅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란 점이 가슴 아프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