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IS의 마지막 도시 점령지를 놓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IS는 자칭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와 경제 중심지였던 이라크 모술을 잃는 과정에서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사실상 ‘포스트 IS 시대’가 개막됐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동은 다시 위험한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다. 중동의 핵심 세력이며 지역패권·영토·종교 등을 놓고 서로가 주적 관계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수, 자원 보유 규모, 군사력 등에서 월등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의 대표 주자 사우디가 아랍권의 ‘공통의 적’ 이스라엘과 사실상 협력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란은 IS 퇴치 과정에서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 주변국들에 파격적인 군사, 자금 지원을 하며 ‘작은 이란’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레바논이 뜨겁다. 4일 사우디는 자국과 교전 중이며 이란이 지원하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이 이란산 미사일을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에 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親)사우디파이며 사우디 이중 국적자이기도 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가 4일 사우디 방문 중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한 배경에도 이란과의 갈등이 있다. 하리리는 이란의 간섭과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레바논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시아파 무장단체)의 암살 위협을 사퇴 이유로 꼽았다. 일각에선 이란과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레바논에서 계속 커지자 사우디가 하리리를 물러나게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로 사우디는 하리리 사퇴 뒤에도 노골적으로 헤즈볼라와 이란을 비판하고 자국민의 레바논 탈출을 지시하는 등 긴장을 키우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10일 예멘 후티 반군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 있는 국방부에 전투기들을 동원해 두 차례 공습을 진행하는 등 강경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위치해 있어 두 나라가 동시에 ‘자기편’ 만들기 작업을 진행 중인 이라크와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은 사우디 동부 지역에서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사우디 동부 지역은 이 나라의 유전과 담수화 시설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동시에 시아파들의 반정부 정서도 강하다. 이란으로선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들이 사우디의 돈줄(원유)과 생명줄(물)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카드인 것이다. 해외의 한 사우디 전문가는 “이란은 사우디와 갈등이 커질수록 사우디 동부 지역 민심 흔들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 경우 원유와 물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 사우디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시리아, 헤즈볼라와 충돌 가능성 커진 이스라엘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 김수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