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이명박 ‘적폐청산’ 충돌]공항서 3분 36초간 작심 비판
격앙된 MB 이명박 전 대통령이 12일 강연을 위해 바레인으로 출국하는 길에 인천국제공항 귀빈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현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인천=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감정 풀이와 정치 보복”→“갈등, 분열 깊어져”
이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글자 수로만 보면 1000자가 조금 안 된다. 그러나 그 주제는 문재인 정부의 제1국정과제인 ‘적폐청산’에만 초점을 맞췄다.
권재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명박 정부)은 통화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가만히 있을 단계가 아니라 할 얘기는 해야 할 단계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5시간 구수회의 “평소 울분의 반만 담아”
이 전 대통령은 토요일인 11일 오전 8시부터 5시간 동안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옛 청와대 참모진을 불러 구수회의를 했다. 메시지의 강도나 분량, 구체적인 문구를 놓고 장시간 회의가 이어지면서 일부 참모는 도시락을 배달시켰다고 한다. 당초 결정된 메시지는 공개된 것보다 강도는 더 세고, 길이는 짧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참모는 “이 전 대통령이 이런 사안에 대해선 결기 있게 해야 한다, 정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시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메시지 강도가 당초 회의 때보다 낮춰졌고 분량은 좀 더 길게 조정되긴 했지만 추석 때에 비하면 수위가 크게 높아졌다. 적폐청산에 대해 ‘감정 풀이’ ‘정치 보복’을 언급한 이 전 대통령은 “한 국가를 건설하고 번영케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파괴하고 쇠퇴시키는 것은 쉽다”고 했다. 적폐청산을 사실상 나라를 건설하기보다는 파괴하는 국정운영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서 오히려 사회 모든 분야가 갈등이, 분열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서 저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 청와대 무대응 속 상황 예의주시
청와대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현안점검회의를 가졌지만 무대응 방침을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수행 중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비서관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문제가 ‘보수 대 진보’의 전면 대결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분열된 보수 진영이 빠르게 결집하는 것은 청와대에도 부담이다. 자칫 ‘전(前) 정권을 넘어 전전(前前) 정권까지 겨냥하는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부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면 충돌로 치달으면 정치 공방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정책 드라이브로 나서야 하는데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1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적폐청산 대신 ‘국가 혁신’을 새롭게 꺼내 든 바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어느 쪽으로 흐르든 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청와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