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24명 ‘성명회 선언서’ 발견 <下>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과 관련해 처음으로 발견된 자료인 일제의 비밀문서 ‘조선총독부 재외선인에 관한 상황조사표’([1])와 러시아 ‘조선인 추방에 대한 헌병경찰대장의 결정문’([2]). 두 자료에는 1910년 선언서를 발표했던 독립단체 성명회는 물론이고 1909년 의거를 일으켰던 안중근 의사([3])와 관련된 내용도 상당하다. 김광만 PD 제공
근대사다큐멘터리 제작사 ‘더채널’의 김광만 PD는 13일 “조선총독부가 명치44년(1911년) 작성한 비밀보고서인 ‘재외선인에 관한 상황조사표’를 일본 도쿄 외무성 자료실에서, 1910년 러시아의 ‘조선인 추방에 대한 헌병경찰대장의 결정문’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극동역사문서보관소에서 발견했다”고 밝혔다.
‘재외선인…’은 1911년 4월 일제 내무성이 당시 외무성 정무국장인 구라치 데쓰기치(倉知鐵吉)에게 보낸 기밀문서다. 구라치는 안중근 의사(1879∼1910)의 하얼빈 의거 조사를 맡아 안 의사를 사형에 이르도록 총지휘한 장본인이다.
특히 이상설과 유인석 김학만 등 성명회 관련 인사의 설명은 매우 자세하다. 이상설을 예로 들면, 생김새나 최근 활동까지 꼼꼼히 적시했다. ‘키 5척4촌(약 162cm), 얼굴 길고 단발. 1909년 7월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왔음. 조선인 밀집 거주지인 개척리에서 배일(排日) 연설을 자주 함. 1910년 8월 23일 한민학교에서 병합에 대한 과격한 연설. 집에 배일 인사가 식객으로 상당수 머물고 있음.’
보고서가 성명회 조직만큼 공들인 또 하나는 안중근 의사 관련 인물이었다. 언급된 인물만 60명이 넘는다. 무엇보다 안 의사 주도로 1909년 손가락을 끊어 피로 맹세한 ‘단지동맹(斷指同盟)’에 대한 내용이 놀랍다. 그동안 12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는데, 이 문서에선 35명이나 거론되고 있다. 안 의사 재판에 통역을 맡았다는 한기동이나 동행친구 이춘길, 안 의사가 실패할 경우 거사에 나설 예정이라는 한종호, 안 의사에게 총알을 제공한 윤치종 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등장한다.
박환 수원대 사학과 교수는 “성명회 선언서 이후 일제는 즉각 해외 독립운동에 대한 조직적 탄압에 들어갔다”며 “결국 이로 인해 연해주 한인들은 불모지로 강제 이주당하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번 러시아 기밀문서는 이 같은 정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1910년 11월 당시 헌병경찰대장인 R. P. 셰르바코프 명의로 작성된 문서는 연해주 한인을 바이칼호 서쪽 도시인 이르쿠츠크로 강제 추방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선언서에 서명한 한인 가운데 2324명 명단을 확보해 여기에 포함시켰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이상설을 비롯한 성명회 간부도 대거 체포해 이르쿠츠크에 유폐시켰다. 이상설은 이듬해 석방돼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와 다시 독립운동에 투신하지만 1917년 병을 얻어 48세의 나이에 순국했다.
정양환 ray@donga.com·유원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