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의 타이밍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어린이집 4세 반에서, A와 B가 놀다가 B가 울었다. B가 A에게 장난감을 건네주다가, A가 확 잡아채는 바람에 다친 것이다. 선생님이 얼른 A에게 가서 말한다. “친구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하세요.” A는 선생님이 시킨 대로 B에게 가서 “미안해”라고 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B에게 “친구에게 괜찮다고 대답해 주세요”라고 한다. B는 아직은 아프지만 “괜찮아” 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과와 용서를 가르친다. 옳은 가르침이다. 교육이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 좋은 가치이다 보니 사전에 갖춰져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너무 빨리 강요만 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위 사례의 언니도 그렇다. 동생의 행동이 실수였고 사과를 한 것도 안다. 그러나 아직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정서의 반응은 생각과 판단, 즉 인지와 언제나 함께 가지 않는다. 안다고 마음이 바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를 인정해 줘야 한다. 좀 그냥 내버려두면서 슬쩍 얘기는 할 수 있다. “근데 네 동생이 많이 미안해하네.” 큰아이가 “그래도 아프다고!” 하면 “그래, 알았어. 아픈 것이 좀 진정이 되나 보자”라고 해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아이가 짜증을 냈다가 화를 냈다가 아프다고 투덜댔다가 하면서 스스로 마음이 풀린다. 그 시간을 주어야 한다.
사람마다 감정을 소화해내는 속도는 다르다. 속도가 늦다고 나쁜 것이 아니다. 그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고 사과나 용서를 강요하면, 아이들은 억울해한다. 빨리 안 받아들이면 나쁜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A도 일부러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두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신속한 화해가 아니라 각각의 아이에게 맞는 가르침이다. 때린 아이에게는 “네가 일부러 때린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선생님이 아는데, 다음부터는 살살해. 너무 휙∼ 하면 친구도 너도 다칠 수 있어”라고 가르쳐준다. 우는 아이에게는 “어디 보자. 조금 빨개졌네. 아팠어?” 하면서 “선생님이 A한테 살살하라고 얘기했어. 살살해야 되는 거라고. 그런데 일부러 때린 것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하면 된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닌데 “미안해”라고만 하라고 하면 때린 아이도 억울할 수 있다. 우는 아이도 아직 아프고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라고 대답하라고 하면 역시 억울할 수 있다. “미안해”, “괜찮아”를 서둘러 강요하면, 사과와 용서는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 마음이 담기지 않는 채로, 배움이 없는 채로 형식적인 것이 되어버릴 수 있다.
아이는 언제나 가르쳐야 한다. 나쁜 짓을 해도, 위험한 짓을 해도, 실수를 해도, 잘못을 해도, 모르는 것이 있어도 가르쳐야 한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빨리 사과나 용서를 하라고 강요하는 상황도 그렇다.
사과와 용서를 시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최고의 가치인데, 너무 형식적으로 흘러가도록 두지 말자는 것이다. 아이가 그것을 가슴 깊이 느껴서 스스로 “야 내가 정말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용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정리가 돼서 스스로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기다려도 용서를 안 한다면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자체로 인정해줘야 한다. 감정을 강요하는 것은 아이들의 정서발달에 정말 좋지 않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