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벗겨진 가발’과 ‘벗어진 가발’ 중 어떤 말이 맞을까? 둘 다 맞다.
갑자기 벗어진 가발 때문에 난감했다.
바람에 벗겨진 가발 때문에 난감했다.
둘은 무엇이 다를까? 기본형 ‘벗어지다’와 ‘벗겨지다’에서 차이를 발견해 보자. ‘벗어지다’는 ‘벗-어지다’인데 ‘벗겨지다’는 ‘벗-기-어지다’다. 이 두 단어의 차이는 ‘-기-’가 들어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된다. 이 ‘-기-’는 뭘까? ‘벗기다’로 확인해 보면 이 ‘-기-’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아이가 옷을 벗다.
아이의 옷을 벗기다. → 아이가 옷을 벗게 하다.
위의 문장들은 ‘-기-’가 ‘-게 하다’의 의미라는 점을 알 수 있게 한다. 이 ‘-게 하다’의 의미를 문법적으로 표현하면 ‘사동’이다. 여기서 ‘사(使)’는 ‘시키다’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벗기다’에 ‘피동’의 ‘-어지다’가 붙은 것이 ‘벗겨지다’인 것이다. ‘벗다-벗어지다-벗기다-벗겨지다’의 관계는 아래 표처럼 정리할 수 있다.
바람에 벗겨진 가발 때문에 난감했다.
문장에 가발이 벗어지게 한 장본인인 ‘바람’이 명확하게 드러나 있질 않은가. 이러한 차이는 ‘맞다 틀리다’를 결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어서 단순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너무 어렵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인정하자. 더 중요한 것은 ‘벗어지다-벗겨지다’를 구분하는 어려움은 ‘벗다-벗기다’나 ‘벗다-벗어지다’를 구분하는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특수한 몇몇의 어려움은 더 일반적인 것의 어려움보다는 중요하지 않다. ‘일반적 예는 아니니 어렵긴 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하며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문법에 접근하는 방법 중 하나다.
문법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벗겨지다’를 이중 피동으로 보아 틀린 말이 아닌가를 의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벗기다’는 사동사이기에 피동의 ‘-어지다’가 붙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은 아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