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지수 런던정경대 사회공공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
아니, 무슨 교수님과의 인터뷰도 아니고 대뜸 1년 후 논문 주제를 내놓으라니…. 기다렸다는 듯 저마다의 관심사를 꺼내놓는 이들 틈에서 나는 마치 영어 말하기 시험장 한가운데에 앉은 듯 말문이 막혔다. 시험장에서와 똑같은 생각이 입 안 가득 맴돌았다. ‘한국말로도 생각해본 적 없는 걸 영어로 답하라고? 너무하잖아!’ 컴퓨터가 묻는 “여가 시간엔 뭘 하세요?”와 같은 일상 질문에도 열심히 외운 유형별 답안들을 머릿속에서 뒤적이던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주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시오’라는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첫날의 좌절은 이후의 수업과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세미나에서도 이어졌다. 물론 가장 큰 장벽은 언어였지만, 그보다는 빠르게 흘러가는 주제에 대한 내 생각을 곧바로 내뱉지 못하는 탓이 컸다. 지금 하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닐까,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주저하다 보면 어느새 주제는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친구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던 반면,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친구들은 자기주장을 말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것이 일리가 있건 없건, TV 속 ‘비정상회담’ 사회자라도 된 양 본의 아니게 얌전히 경청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그래도 사회자 손엔 들고 읽을 대본이라도 있지!
그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A=B’라 배웠다면 반드시 A는 B라고 답하는 것이다. 다른 답이나 질문을 하면 최소한 눈치를 받는 사회에서 자랐다. 그래서 유형을 외운다. 다른 걸 틀린 것이라 배운 탓에 나의 다른 의견 하나로 나 자신이 틀렸다 판단될까 두렵다. ‘훅 간다’는 말의 존재가 보여주듯, 말 한마디로 사람을 극단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은 사회에선 사실 근거 있는 두려움이긴 하다. 다양한 ‘의견의 밭’이 확보되지 않은 사회에서, 단 하나 돋아난 싹은 언제나 주목과 경계의 대상이 된다.
반드시 서양의 토론 문화가 우월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그룹의 공유 가치, 내 발언으로 인해 타인이 받게 될 느낌 등 언제나 ‘맥락’을 고려하는 점은 아시아권 문화의 특성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싼 돈을 지불하고 공부를 하러 온 강의실에선 침묵 파티보다는 아무 말 대잔치에 참여하는 쪽이 낫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선 내 생각이 다른 이들의 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것을 반박할 수 있는 힘이 내 논리에 있는지를 보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지 않을까 싶다.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 많이 어렵다. 매번 준비와 용기가 필요하다.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는다. 네 생각은 무엇이냐고.
원지수 런던정경대 사회공공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