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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아바타로 만들지 말고 심리적 기둥이 돼 주세요”

입력 | 2017-11-16 03:00:00

[매일 학원 가는 아이들]<下> 전문의들이 말하는 ‘부모의 역할’




‘학교는 아이가 이미 학원을 다녔다고 전제하고 수업을 한다.’ ‘학벌사회에서 차별받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부모의 일리 있는 항변이다. 현행 교육 시스템에서 사교육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치열한 경쟁 사회일수록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는 마지막 보루가 돼야 한다고 전문의들은 조언했다.

이번 동아일보-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공동 설문 조사에서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에게 사교육 부작용 진료 경험을 통해 생각하게 된 ‘부모의 역할’을 적어 달라고 했다. 전문의들의 응답은 △부모가 자녀를 독립된 개체로 인정하고 △다른 아이가 아닌 내 아이를, 행동이 아닌 내면을 관찰하고 △부모는 ‘심리적 지지대’가 돼야 한다로 요약됐다.

○ ‘나는 나, 너는 너’ 자녀도 독립 개체

부모가 자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면 먼저 자녀가 타인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들은 “부모와 자녀는 분리된 존재, 독립된 주체다”, “부모는 자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보다 어리게만 바라본다”, “자녀는 부모의 아바타가 아니다”, “도덕성과 사회규범을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가 자녀와 심리적인 결별을 하는 것이야말로 아이가 자기 주도적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첫걸음이란 설명이다.

그런 다음에는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내 아이의 내면을 관찰해야 한다. 아이가 숙제를 자꾸 미루려고 한다면,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기 전에 그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부모의 역할은 이해와 수용이 먼저다. 방향 제시와 지도는 그 다음이다”, “충분한 대화를 통해 아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부모가 함께 찾아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남의 집 아이들이 뭐 하나에만 관심 갖지 말고 내 아이가 어떤지 이해해야 한다”, “부모 눈높이에서 목표를 강요하기보다 자녀의 특성을 이해하고 적절히 이끌어준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다. 고분고분하게 학원을 잘 다니는 아이일지라도 정서에 맞춘 대화를 통해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로 ‘부모는 자녀의 심리적 지지대’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부모는 아이의 베이스캠프”, “믿고 기다리고 응원하고 도움 청할 때 도와주기”, “아이의 고통에 공감하기”, “부모는 공부를 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어려울 때 상의할 대상이 되어주는 존재”, “너무 앞서 가지 마세요”, “지지자와 상담자(Supporter and Counsellor)”, “인생 선배이자 조언자” 등이다.

○ 부모 내면 불안부터 직시해야

‘남들은 다 이 정도 하는데…’같이 불안을 부추기는 사교육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부모 스스로 마음속 불안을 직시하고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전문의들은 “스스로 돌아보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녀에게 투사해선 안 된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미래가 불투명하다 보니 현재 아이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 인생 망할 것 같은 불안을 부모가 느낀다. 이를 해소하고자 과도한 사교육을 시키면 역효과가 난다”, “자녀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다”, “아이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려 하지 말라”고 답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과도한 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를 이용한 상업적 정보에 유의해야 한다”, “사교육은 어디까지나 남보다 앞서기 위한 교육으로 이는 보조적인 것” 등과 같은 현실적인 조언도 있었다.

한 전문의는 과도한 사교육 상담 사례를 예로 들며 “부모 본인이 경쟁 위주의 사회 분위기에 매몰돼 입시에 실패하면 인생 전체가 실패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며 “이럴 때 부모 본인의 삶부터가 황폐하고 즐겁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예전에 내가 못한 걸 시키는 건 아닌지, 잘못하면 내가 욕먹을까 봐 시키는 건 아닌지, 내가 너무 완벽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야 한다”처럼 부모가 스스로 마음 상태를 돌아보라는 주문이 있었다.

전문의 대다수는 과도한 사교육의 책임을 부모에게만 돌릴 수 없다는 데 공감했다. 당장 “공부에 적합한 아이들은 공부를 해서 국가를 이끌 인재로 키우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공부 내용과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고, 똑같은 길을 달리다가 소수만 빼고 나머지는 나가떨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비판부터 나왔다.

한 전문의는 “부모의 불안을 자극하는 사회 분위기, 예전에 비해 취업이 어려워지고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직업에 따른 소득격차가 심해지는 등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런 부분에 대한 부모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사교육)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더라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맞벌이 부부에게 사교육은 낮 시간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돌보미 기능이 있다. 아이를 돌봐주는 공부방 같은 대안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응답자들은 “부모는 어렵지만 보람 있는 역할”이라고 정의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솔선수범”이라며 아이의 ‘롤 모델’로서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하경 whatsup@donga.com·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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