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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최영해]노무현도 유혹한 국정원 뒷돈

입력 | 2017-11-16 03:00:00


최영해 논설위원

국회가 14일 내년도 청와대 예산 1801억 원을 승인하면서 특수활동비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청와대에도 국가정보원처럼 영수증을 내지 않고 쓸 수 있는 돈이 꽤 있다. 문재인 청와대는 올해 232억 원이던 특수활동비를 내년엔 182억 원으로 22% 줄였다. 박근혜 정부에선 이것도 모자라 매년 10억 원씩, 40억 원을 국정원에서 끌어 쓴 사실이 드러나 전직 국정원장 3명이 구속될 처지다.

성토 당한 문재인 비서실장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특수활동비마저 줄인다니 비교가 된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측근이 아닌 경제관료 출신 이정도 기획재정부 행정안전예산심의관을 발탁했을 때 ‘돈 문제만큼은 이전 청와대와 다르겠구나’라고 예상한 것이 빗나가지 않았다. 최근 사태를 보면서 문 대통령이 일찌감치 특수활동비라는 판도라 상자를 열겠다고 작심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국정원은 청와대에 뒷돈을 건네려 했다. 청와대 예산이 넉넉지 않다는 사실을 안 국정원 간부가 몇 번이나 노 대통령에게 “필요하면 우리 회사 돈을 좀 갖다 쓰시라”고 권했지만 대통령은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청와대 참모들이 몰래 국정원에서 뒷돈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노 대통령은 손대지 않았던 것 같다. 노 대통령 가족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4차례에 걸쳐 640만 달러(약 72억 원)를 받은 혐의로 대통령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게 되고, 이것으로 대통령이 유명을 달리하자 주변에서 “국정원 돈도 물리쳤던 대통령인데…”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2009년 5월 노 대통령 장례를 치른 뒤 노무현 청와대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 성토에 한목소리를 냈지만 문재인 비서실장을 향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임기 마지막 해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했어야 했는데 문 실장이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후원자 박연차가 권양숙 여사에게 건넨 돈이 생사를 가르는 독약이 될 줄 그땐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마는. 노 대통령 서거 발표부터 장례를 치르기까지 문 실장은 놀라울 정도로 시종일관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데선 많이 울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가슴 한편엔 정치의 덧없음과 함께 복수의 칼날을 벼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찰은 노무현 청와대 때의 이런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다. 국가 안보를 지키고 대공(對共) 수사와 정보 수집을 하는 데 쓰라고 국민 세금으로 국정원에 주는 특수활동비가 한 해 5000억 원 가까이 된다. 극히 일부라지만 청와대가, 그것도 개인의 잇속을 챙기는 데 이 돈을 끌어 썼다면 엄벌하는 게 마땅하다. 그럼에도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수장(首長)을 지낸 사람을 마치 군사작전하듯 일망타진하는 모양새가 국민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도 고려해야 한다. 국정원이든 어디든 청와대가 눈 먼 돈을 끌어 쓰지 못하도록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한 일이다.

정적 겨냥한 적폐청산 말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검찰은 노무현 수사로 충성심을 보였고, 전 정부 때 임명된 국세청장은 새 정권 입맛에 맞춰 세무조사의 칼을 휘둘렀다. 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은 권력에 알아서 엎드리고 힘이 빠질 듯하면 달려드는 게 본성이다. 어느 정권이든 사정을 정적을 치는 것에 목표를 두면 그 칼날에 언젠가 자신도 베일 수 있다. 요즘 이 정부의 적폐청산에 노무현의 그림자가 자꾸 어른거리는 것은 그래서 개운치가 않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