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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두려워 집에 못 가”… 추위 떨며 대피소서 뜬눈 밤샘

입력 | 2017-11-16 03:00:00

‘강진 날벼락’ 포항 주민들 표정




놀란 가슴 쓸어내리지만…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지진 발생으로 대피한 주민들이 모여 있다. 이날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뒤 여러 차례 여진이 이어지자 시민들은 주거지에서 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포항=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15일 오후 10시경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지친 모습의 주민 500여 명이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나같이 불안한 표정이었다. 일부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정면만 바라봤고 일부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얇은 매트 위에 누워 있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모두들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추위보다 더 무서운 건 여진의 공포였다. 상당수는 체육관으로 들어가지 않은 채 밖에서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한 40대 여성은 아이들이 “엄마, 너무 춥다”며 체육관 안으로 팔을 잡아끌자 “더 큰 지진 나면 여기도 무너질 수 있다”며 달랬다. 이 여성은 “남편이 더 안전한 곳을 찾는 대로 옮길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체육관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은 근처 아파트 주민이다. 이 아파트는 외벽이 떨어지고 갈라지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이모 씨(77)는 “집 안 물건이 거의 다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서워서 도저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겠다. 당분간 체육관에서 지낼 생각”이라며 망연자실해했다. 대피 안내방송과 보급품 지원이 늦다며 포항시 공무원에게 항의하는 주민들도 눈에 띄었다. 모포를 뒤집어쓰고 대학수학능력시험 공부를 하는 수험생도 보였다.

한낮에 닥친 지진의 공포는 밤늦게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진 탓에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는 시간이 갈수록 증폭됐다.

북구 환호동 대도중 강당에서는 주민 200여 명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김정구 씨(67)는 “아파트에 금이 가고 외벽이 무너져 아내와 함께 정신없이 대피했다. 춥지만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진이 발생할 때마다 사람들은 “또 흔들렸어 또 흔들렸어, 어서 나가야 돼”라고 말하며 다급히 강당을 벗어났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지만…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실내체육관에 지진 발생으로 대피한 주민들이 모여 있다. 이날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뒤 여러 차례 여진이 이어지자 시민들은 주거지에서 나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포항=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지진 피해를 입지 않은 시민 상당수도 집으로 향하지 않은 채 밤늦게까지 학교 운동장과 공원, 큰 도로 등 넓은 공간을 헤매고 다녔다. 1층에 자리한 식당과 카페 등지를 전전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여진에다 16일로 예정된 수능시험까지 연기되면서 포항 전역이 불안감에 짓눌리는 모습이었다.

영일대해수욕장 1층 커피전문점에서 밤을 보낸 김모 씨(42)는 “오후 9시경 천장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4, 5초 동안 심하게 흔들리는 여진이 발생해 정말 놀랐다. 2층에 있던 10여 명이 ‘우와’ 비명을 지르며 모두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흥해읍 망천리 마을회관에 모인 홀몸노인 7명은 평생 처음 겪은 공포의 순간에 몸서리치며 밤을 지새웠다.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한 채 서로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안부를 묻는 휴대전화 벨이 쉴 새 없이 울렸다. 최상순 씨(89·여)는 “집이 무너질까 무서워 밖으로 뛰쳐나와 이곳으로 달려왔다. 다들 혼자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모여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임선 씨(84·여)는 “6·25전쟁도 겪었지만 태어나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다. 우리 마을에는 대피소가 없어 임시로 마을회관을 사용하고 있다. 다들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할 정도로 무서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구 장성동과 두호동 일대는 밤새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집으로 가는 걸 포기하고 친척집 등 다른 곳으로 가려는 차량들이 도로에 쏟아져 나오면서 일부 구간은 주차장처럼 변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이곳은 평소보다 많은 차량이 운행에 나서면서 주요 사거리마다 경찰관이 교통 신호를 조정해야 할 정도였다.

안모 씨(39)는 “포항에 살면서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 많은 이웃들이 여진이 무서워 다른 지역 친척집이나 피해가 덜한 친구집으로 대피했다. 지인 중에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일부러 차를 계속 몰고 다니다 그냥 쪽잠을 자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장성동의 한 일식집은 기왓장으로 만든 입구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폭삭 내려앉아 처참한 모습이었다. 내부 벽과 주방, 화장실 벽에 금이 가고 타일이 모두 떨어졌다. 접시도 다 깨지고 천장에 있는 조명이 테이블에 떨어져 박살난 상태였다. 냉장고와 정수기도 넘어지는 등 상당수 집기는 사용할 수 없어 보였다. 직원 1명도 대피하다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주인 김정환 씨(49)는 “인테리어와 집기가 손을 못 쓸 정도로 부서졌다. 장사는커녕 완전히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아 걱정이다”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포항=장영훈 jang@donga.com·황성호·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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